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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섭 감독은 한국의 코미디 영화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이름이긴 하지만 작품적으로는 그다지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적당히 흥행을 노릴 만한가벼운 영화를 값싸고 빠르게 찍어주는 감독 중의 한 명이었던 듯 싶다. 60년대 후반 <남자식모>, <남자미용사>등 구봉서, 남정임과 함께 한 일련의 영화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코미디에 좀 더 정진한 듯 보이지만, 코미디를 통해 시대를 성찰하기 보다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가볍게,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유치할 수 있는 농담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1979년에 개봉된 <아리송해> 역시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수 이은하의 히트송을 등에 업고 흥행을 노린 이 작품은 가수를 지망하는 왈가닥 가정부 정옥, 부잣집 아가씨와 결혼해 한 몫 잡아보려는 운전사 기동의 스토리를 중심에 두고 작곡가 배삼룡의 에피소드를 또 한축으로 하는 이야기를 통해 노력없이 한 몫 잡으려는 세태를 꼬집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의도가 영화 자체가 은유나 여러 표현장치들을 경유하기 보다는 워낙 단도직입적다 보니 너무 잘 드러나는 장점은 있다. 그러나 잘 드러난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영화다. 영화는 영상으로 말하는 것인데, 이 영화는 그냥 배우를 세워놓고 카메라만 돌린 건 아닌가 할 정도로 영상미라고 할 만 한게 없다. 그냥 예전 TV의 웃으면 복이와요의 한 코너를 뚝 떼어내 놓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간간히 참 웃기긴 하다. 웃음이야말로 코미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일 테지만, 그런데 유머라는 말과는 또 어울리지가 않는다. 유머에는 어떤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데, 심우섭 감독의 이 영화는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건 그냥 웃긴다는 거다. 엎치락 뒤치락, 이은하의 노랫말처럼 앞뒤틀린 상황이 슬랩스틱이 되어 유치하더라도 웃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본연의 임무를 완수한 것이 되는건가? 변두리 삼류극장에서 2편 동시상영용으로 딱 적당할 것 같다. 액션영화 한편과 상영되면서 노동으로 지친 가난한 그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점에서 어쨌거나 잠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나쁜 건 아니다. 그래서 심우섭 감독은 수많은 감독들이 한두편의 영화를 만들고 사라진 충무로에서 거의 25년간이나 그렇게 많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개봉 : 1979년 10월 27일 아세아극장

감독 : 심우섭

출연 : 권기옥, 이기동, 배삼룡, 김희갑, 김애경, 정애자, 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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