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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수 감독의 <여자형사 마리>는 박력있는 자동차 추격전으로 힘있게 시작한다. 미국영화와 비교한다면이야 단조롭긴 하지만, 당시의 한국영화에서는 드문 편이었던 자동차 추격씬은 그 자체만으로 화면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더군다나 볼거리에의 취중은 주인공 마리역의 루비나의 세련된 외모도 한 몫하고 있거니와, 홍콩을 배경으로 활용하며, 나이트클럽의 섹스 쇼를 끼워넣는등 이국적인 화려한 볼거리를 강조하면서 철저한 오락영화가 되려고 한 듯 보인다. 그런 점에서 <여자형사 마리>는 어쩌면 70년대 유행했던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를 재빠르게 한국적으로 변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지만 영화의 완성도가 너무 낮은 관계로 한국영화계에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고, 장르로 정착시키는데도 실패하고 만다. 비슷한 영화로 신상옥 감독의 <여수 407>를 들수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대로 장르적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는 영화이니 썩어도 준치라는 말을 '죄송스럽지만' 신상옥 감독에게 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어쨌거나 신필름의 후신이라 할 신프로덕션이 이런 B급 장르 영화를 통해 재기를 도모했던 듯 보이지만, 결국 신필름은 이런 영화들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마약조직으로부터 뺏은 마약을 다시 빼돌려 마약조직에 잠입하려는 형사 마리의 목적은 조직의 분쇄가 아니라 바로 이전에 조직에 잠입했다 실종된 경찰애인 추치푸의 행방을 찾기 위한 것. 하지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찾아낸 추치푸는 오히려 마약조직의 두목이었고 천하에 둘도 없는 나쁜놈이었던 것. 결국 마리와 추치푸는 목숨을 건 한판대결을 펼치고야 마는데

 

여기까지 스토리가 달려오면서 인과는 엿바꿔먹고, 인물은 극단적으로 단조롭게 구성하면서 제대로 된 액션은 자동차추격씬으로 만족하시라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사이사이 모델이자 가수 출신인 루비나의 세련된 외모와 노래를 듣고, 여형사로서는 대단한 패션감각을 소유한 마리의 패션쇼를 감상하다가 이 영화의 가장 황당한 장면이라할 날아라 원더우먼으로의 빙의장면을 보며 허탈해하면 된다. 간호복을 입고 시체실의 침대 시트로 온몸을 덮고 숨어있는 마리. 악당이 들어와 찾지 못하고 나가면, 바로 침대에서 시트를 벗어던지며 일어나면, 세상에나, 간호복은 벗어던지고 잠바와 바지, 액세서리까지 완벽하게 갖춘 모양새다. 이 얼마나 원더우먼을 찜쪄먹을 변신이면서, 시침 뚝 떼고 편집으로 이어붙이고 있는 감독의 뻔뻔한 대범함이냔 말이다. 그런 상태이다 보니 이 장면 뒤에 이어지는 추치푸와의 격투씬이 아무리 박력이 없다 해도 그야말로 용서는 되는 넓은 아량을 품게 만들어주고마는 것이다.

 



이은수 감독은 <여자형사 마리>이후 더 이상 극영화로 경력을 쌓지 못했다. 여주인공 루비나는 더 이상 영화를 찍지 않은 채 패션디자이너가 되었다. 신프로덕션은 문을 닫았다. 그러고보니 <여자형사 마리>는 감독과 주연, 제작자를 모두 문 닫게 만든 영화로구나. 조연으로 출연한 윤일봉과 사미자는 중견연기자가 되었지만 이 영화에서 만큼은 대충대충 연기하고 있고, 추치푸 역의 정세혁은 80년대까지 B급 영화에 출연하긴 했지만 큰 족적은 남기지 못했다. 나도 그렇다. 3류 영화를 이렇게 길게 쓰고 있다니 씹어도 씹어도 샘솟는 맛이 쫄깃해서 인가? 3류라도 재미가 있거나 매력이 넘치는 영화도 많지만 아쉽게도 <여자형사 마리>는 두가지 모두 놓치고 만 것 같다.


개봉 : 1975년 4월 5일 피카디리극장

감독 : 이은수

출연 : 루비나, 윤일봉, 정세혁, 사미자, 최인숙, 김옥진, 남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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