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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내 주먹을 사라>를 재미있게 보았다. 이야기를 신파스럽게 끌로 가고 있긴 하지만, 어렵고 가난한 환경속에서, 나름대로 위악을 떨어본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착한 본성을 가진 캐릭터들이 좋았다. 더불어 실제 권투선수인 김기수가 무표정속에 캐릭터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기 위해 애쓰는 연기도 귀여웠고, 베테랑인 김지미나 전계현의 연기. 김기수를 통해 이루지 못한 동양챔피언의 꿈을 이뤄보려는 늙은 코치역의 박노식도 좋았고, 아역 김천만의 능청스런 연기도 마음에 들었다. 착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주먹을 사라>는 마음에 드는 영화였다.

 

그러나 이제 좀 냉정해져 보자면, <내 주먹을 사라>는 김기덕 감독의 연출력은 실종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최초의 동양미들급 챔피언이었다는 김기수의 스타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관객을 끌어모으려는 의도밖에는 남지 않는 영화라고 할까? 그것도 흥행에 실패하면서 빛이 바랬다. 이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은 균형을 맞추는 데 실패한 것 같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세 번씩 등장하는 죽음은 이 영화의 균형을 깨는 치명적인 구성이라고 보았다.

 

먼저 권투 경쟁 상대였던 남선수의 죽음은 사건의 시작과 인물들의 갈등을 만드는 장치로써 아주 적절해 보였다. 이 사건은 적절한 인과로 인물들을 얽혀들게 하면서 무리없이 영화를 진행시킨다. 그리고 남선수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김기수가 권투를 그만둔 후 다시 권투 글러브를 끼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두 번째 죽음. 즉,  코치의 죽음까지는 전형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그럭저럭 인정할 만 했다. 어쨌든 이 죽음까지는 동기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번째 죽음으로 등장하는 김지미의 동생(김천만)의 죽음은 이 영화의 모든 장점을 갉아먹어버렸다. 무엇보다 이 죽음은 관객의 눈물을 쥐어짜는 용도 외에는 극중에서 어떤 동기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파토스를 동반하지 못한 이런 신파에 손수건을 적실 관객도 분명 있겠으나, 이것은 연출의 실종이고, 대표적인 과잉의 이미지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충분히 화제가 될 만 했던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것도 어쩌면 이런 과잉에 있지 않나 싶었다.

 

솔직히 이 영화는 비극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김기수가 챔피언이 되고 김지미의 동생에게 트로피를 안겨주면서 힘껏 안아주는 결말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아무리 60년대 가난했던 시절이라 해도 희망을 꿈꾸며 미소 한번 짓는 것이 사치는 아닐진데, 이렇게 영화가 요구하지 않는 눈물을 흥행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쥐어짜려 한다면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밖에 안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만들었더라면, 이 영화는 나만 좋아하는 영화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가 되었을 것을... 흥행실패는 당연한 결과였다.


개봉 : 1965년 8월 7일 아카데미극장

감독 : 김기덕

출연 : 김기수, 김지미, 박노식, 전계현, 이예춘, 이빈화, 최성, 김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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