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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 감독의 <지하실의 7인>에 대해 좋은 영화다. 걸작이다. 라는 말을 간혹 들으면서 꼭 보고 싶은 영화중의 한편이었는데, 실제로 보고 나선 고개를 약간 갸우뚱했다. 물론 이 영화가 싫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지하실의 7인>은 전형성의 덫에 갇힌 영화이기도 했다. 당시 반공영화가 가지고 있는 뚜렷한 이분법적 선악구도는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을 지독히도 평면적으로 보이게 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인질로 잡힌 성직자들인 안신부(허장강), 정수사(이순재), 루시아 수녀(윤소라) 와 낙오한 북한군인 네 사람(이예춘, 김혜정, 윤양하, 박근형) 사이의 갈등의 깊이가 얕다. 게다가 북한군들 간의 갈등이 도드라지는 것도 아니어서 긴장을 지속시킬 만한 고리가 약한 편이다. 그래서 감독은 기침소리를 복선으로 깔면서 인민군 부사령관(이예춘)을 등장시킨다거나, 수수께끼를 품은 인물인 마리아(윤정희)를 통해 서스펜스를 내포하는 방식으로 진행시키지만 큰 효과는 없는 편이다.
어쨌든 안신부의 비폭력주의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지만 영화적 재미라는 점에서는 불을 붙이지는 못한다. 젊은 수사의 혈기 역시 성직자라는 한계에 갇혀 있는 편이고, 북한군 마저 계급에 갇혀 이렇다 할 갈등구조를 만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제 승패는 마리아에게 달려있다. 마리아가 표상하고 있는 것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라 할만한 일반적 사람들이다. 그런데 마리아도 역시 수동적이다. 여전히 북한군 장교에게 학대 당하는 걸 운명적으로 받아들인다. 성직자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 관객들이 마리아에게 동정을 품고 심정적으로 동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 상태에서 마리아는 북한군 장교를 안고 총을 맞기로 결심한다. 좀 오버 하자면 어쩌면 국민은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 희생자의 역할까지 강요당해 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이성구 감독의 <지하실의 7인>은 절반의 성공이다. 반공영화라는 테두리에 집착하지 말고 좀 더 인물들에게 접근했다면 이 영화는 훌륭한 심리드라마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시대가 그걸 용인하지 않았을 것 같다. 북한군에게 깨끗한 옷을 입혀도 용공혐의를 받던 시대가 아니던가?
개봉 : 1969년 10월 31일 명보극장
감독 : 이성구
출연 : 허장강, 이예춘, 이순재, 윤정희, 김혜정, 윤소라, 김석훈, 윤양하, 박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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