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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에 <초우>로 세련된 청춘 멜로드라마의 장을 열었던 정진우 감독. 그가 1년 후 다시 한번 세련(?)으로 무장한 영화를 발표했는데, 바로 <사월이 가면>이다. 여기서 세련이라 함은 당시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모습이라 할 고리타분한 대사를 읊조리는 느린 전개로 신파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그렇고 그런 영화들과는 일정 부분 차별화시켜보려는 나름대로의 연출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월이 가면>은 자연스럽게 쌈박한 대사를 읊조리는 빠른 전개로 신파에서 탈피한 영화가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스타일적으로야 세련되어 보인다고는 하나 <초우>와 같은 성취에는 도달하지 못한 영화구나 하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썩 재미를 느끼지도 못한 편이고 말이다.

 

아마 60년대의 한국사회는 지금보다 더, 더, 더, 서구사회에 대한 동경이 강했을 것이다. 여주인공인 문(문희)은 한국 전쟁 당시 프랑스로 입양된 후 자랐고, 이제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한국으로 탈출하듯 여행 온 한국인이면서 외국인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한국인의 모습으로 서구인의 삶을 사는, 어떻게 보면 당시 사람들의 판타지를 구현하는 인물이기도 할텐데, 그래서 그녀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고향땅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와 우연히 만나 동행하게 되는 인물 성훈(성훈-배우 이름이 극중 이름과 똑같다)은 그녀를 통해 외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는 야망을 숨긴 한국의 청년으로 분한다. 문에게 한국땅은 그리움의 대상이었지만, 성훈에게 한국땅은 꿈을 이루기엔 너무 작은 절망의 공간이었던 셈인가?

 

<사월이 가면>은 서구적인 자유연애의 모습이나 <로마의 휴일>을 연상하게 하는 이야기 구조 등을 통해 재미를 추구하려 한 듯 보이지만, 문이 이국적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풍경은 아이러니하게도 관객들에겐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 그녀의 시선에 동일화하기는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더군다나 이러한 점을 커버해 줄만한 낭만적 사랑에 대한 동경은 세련으로 착각될 수는 있으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시를 읊어대는 듯한 대사와 흐름에 가로막혀 겉돌기만 할 뿐이다. 어쩌면 정진우 감독은 세련이라는 의미를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단순히 서구의 모더니즘 영화의 풍경을 흉내 낸다고 해서 그것이 세련은 아닐 것이다. 결국 <사월이 가면>은 세련을 가장한 영화였을 뿐. 후반부로 갈수록 약발이 떨어지는 영화였다는 생각이다. 예쁜 화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패티김의 주제가마저 없었다면 많이 지루할 뻔 했다. 


개봉 : 1967년 5월 10일 아카데미극장

감독 : 정진우

출연 : 문희, 성훈, 안은숙, 김칠성, 양훈, 이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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