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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애정공백부터 하겠다. 임상수 감독은 <오래된 정원>을 본 이후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부터 <하녀>까지 다 좋아한다. 그리고 물론 최근작 <돈의 맛> 역시 아주 좋았다.

 

<돈의 맛>을 보다보면 ‘모욕’이라는 대사가 아주 인상적으로 들려온다. 그렇다. 우리들은 모욕을 당하고 살고 있지만, 그것이 모욕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그걸을 감내하고 산다는 것이다. 더불어 뛰는놈 위에 나는놈 있다는 말이 퍼뜩 떠오른다. 날고 기는 백금옥 여사와 그녀의 가족들은 아무리 우아한 척, 고매한 척하며 모욕을 주는 존재인 줄 알지만 알고보면 그들은 또한 미국인 로버트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다.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감내하거나 하면서. 아마 로버트 위엔 더한놈이 있을지도.

 

<돈의 맛>은 어쩌면 이토록 천박한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라는 것이 어디에서 연유했는가에 대한 질문일수도 있다. 백금옥(윤여정)의 천박한 아버지의 의상에 주목했다. 값비싸 보이는 그 겉옷이 일본풍으로 보인 건 나 뿐인건가? 식민지 시대 친일로 시작된 한국의 자본주의 꼼수를 숨겨 놓고 있다고 보였다. 이후 미국이 차지한 그 자리를 로버트가 보여준다. 결국 대한민국의 재벌은 역시 그들의 하녀였을 뿐이다.

 

또한 이 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 대한 주석이다. 영작(김강우)이 고문을 당할 때 배경으로 보여지는 1960년작 <하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어떤 사실을 직시한다. 그러나 나미(김효진)가 보고 있는 2010년작 <하녀>는 나미의 캐릭터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연결고리이면서 더불어 변화를 갈망하는 감독의 의도가 숨어있는 장면이다.

 

그렇다. 임상수 감독은 한번 휘젓고 난장질을 하며 코웃음 한번 치고 산화하는 것보다는 좀 더 직접적으로 변화의 물꼬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전세대라 할 윤회장(백윤식)이 에바와의 사랑을 통해 천박한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실패하는 데 비해, 영작과 나미는 변화의 물꼬를 트는 지점에 서 있다. 영작은 재벌의 하녀이지만 한국의 중산층이다. 필리핀인 에바는 한국 중산층들의 하녀이지만 그녀는 필리핀에 하녀를 두고 있기도 하다. 하녀에 하녀에 하녀에... 물고 늘어지고 있는 구조는 결국 우리는 모두 하녀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무거운 이야기를 가벼운 코미디처럼 만들면서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가볍게 웃으며 보다보면 어느덧 무거운 주제가 떡하니 가슴에 꽂히지만, 마냥 부담스럽진 않다. 부담은 임상수 감독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조롱을 원하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스스로를 조롱하면서 새롭게 변할 것. 그것이야말로 임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는 이유이다.

 

<돈의 맛> 멋진 영화다. 임상수 감독의 멋진 한방이었다.


개봉 : 2012년 5월 17일

감독 : 임상수

출연 : 김강우, 백윤식, 윤여정, 김효진, 온주완, 황정민, 김응수, 정원중, 달시 파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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