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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곤 감독의 <오직 그대만>은 멜로드라마를 볼 때 마다 기대하곤 했던 감정의 동요를 오랜만에 느끼게 해 준 영화다. 사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송일곤 감독하면 의례 무거운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나에게 각인되어 있던 까닭에, 이 영화도 멜로드라마를 경유한 묵직한 소재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정말 멜로드라마였다. 그것도 흔하다면 흔한 소재와 구성으로 중무장한 영화. 자칫 발을 삐끗했다가는 나쁜 의미에서의 전형적이고 촌스럽고 신파라는 소리를 딱 들어먹게 생긴 그런 꼬라지로 말이다.

 

그런데 꼬라지가 아니었다. 전형적이라 할 수는 있지만 그걸 품어내는 방식이 남다르다. 미세한 차이. 그것이 영화의 수준을 결정짓는 요소라면, 송일곤 감독은 분명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고 명품멜로드라마를 만들었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서 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지 못하고,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라는 명예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눈 먼 소녀 정화(한효주)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돕는 남자 철민/마르셀리노(소지섭)라는 설정을 보면서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를 떠올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송일곤 감독은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에 오마주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한국적 변형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채플린이 철저하게 신파를 배제하며 세련미를 추구할 때, 송일곤 감독은 오히려 신파적인 감성을 내세운다. 그건 채플린에 대한 오마주의 배반이 아니라 오마주의 한국적 존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감성이 참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이식수술 후 시력을 회복한 정화와 불법 격투기 조직의 음모로 몸을 상한 철민이 재회하는 장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정화를 위해 떠나려는 철민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칠때는 마치 그 눈물이 내 손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듯 했고,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정화가 철민을 찾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가슴을 잡으며 오열 할 때는 마치 그 손이 내 가슴을 쥐고 있는 듯 했다.

 

<오직 그대만>을 보는 동안 소지섭의 연기가 좋았다. 그리고 송일곤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재미있었다. 간간히 잉여로 느껴지는 씬과 컷이 보이긴 했고, 좀 더 부드럽게 봉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그런 단점보다는 감성의 결이 더 짙게 다가온 영화였다.


개봉 : 2011년 10월 20일

감독 : 송일곤

출연 : 소지섭, 한효주, 강신일, 박철민, 오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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