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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미>는 1969년에 개봉된 고영남 감독의 스릴러영화다. 고영남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만든 감독이지만, 작품의 수준이 들쑥날쑥 고르지 못한 편이다. 이 영화 역시 초반부 하나하나 서스펜스를 쌓아가는 스토리 텔링을 통해 꽤 근사한 스릴러 장르영화가 될려나 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구성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그만 빛을 잃고 말아 아쉽다. 만약 초반부의 파워만 제대로 끌고 갔더라도 이 영화는 <깊은밤 갑자기>와 더불어 그의 대표작중의 한편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뭐, 결국엔 잊혀진 영화가 되고 말았지만.
과거의 악행을 발판으로 큰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용구(박노식)에게 어느날 백장미의 망령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이후 병원에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간호사인 난주(윤소라)를 사랑하는 박의사는 자신과 한원장이 관련된 과거의 추악한 사건의 진실을 얘기하고, 그 사건의 관련자들은 하나둘씩 죽음을 당한다. 결국 이 사건은 한용구에 의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어머니의 복수를 위한 난주가 외삼촌과 함께 꾸며낸 것이었다.
영화의 시작은 무척 근사했다. 미스테리하게 발생하는 사건의 중심에 난주를 두고 그녀를 통해 사건을 확장해 나가는 방식은 긴장감을 적절하게 배가시키면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건이 양파껍질 벗겨내듯 한꺼풀씩 중심으로 진입할수록 긴장감이 극도로 떨어진다. 이것은 아마도 하나씩 쌓아가던 줄거리 속에서 복선을 심어놓는 것에 서투른 탓은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영화는 후반부로 가면서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자힌 듯 대사를 통해 한꺼번에 과거의 사건을 말해버린 후부터는 모든 행위의 임팩트가 현저히 약해져 버렸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정보가 하나씩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쏟아져 버렸기 때문에 복수에 성공한 난주의 울분에 응당히 폭발해야할 크라이막스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영화는 밋밋한 채 결과적으로 용두사미의 영화가 되고 만 것.
결과적으로 <백장미>는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영화가 되고 말았지만, 분명 매력적인 부분도 있는 영화다. 우선 여전히 훌륭한 박노식의 연기, 신선한 마스크의 뉴페이스 윤소라의 매력이 눈에 띈다. 더불어 스릴러에 한국적이라 할만한 괴기장르를 적절하게 가미한 것도 일단은 튀지만 괜찮게 보았다. 그러나 오프닝에 등장했던 자막과 일본제국주의의 악랄함 운운하는 보이스 오버는 이 영화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아직 모르겠고, 엔딩에서 복수를 마무리한 난주와 종수의 새마을 운동식 난데없는 대사가 진지해야할 장면을 조금은 유치하게 만들어버려서 잠시 썩소도 지었다.
개봉 : 1969년 9월 26일 아카데미극장
감독 : 고영남
출연 : 박노식, 윤소라, 김성옥, 도금봉, 이경희, 백일섭, 사미자, 추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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