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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영화의 짧은 전성기가 끝날 무렵인 1978년에 개봉된 <고교 명랑 교실>은 하이틴 영화의 대표적 이름이 된 김응천 감독의 작품이다. 당시 문여송, 석래명 감독이 김응천 감독과 함께 삼각구도를 형성하며 경쟁했지만 결국 하이틴 영화의 대부라는 호칭은 김응천 감독의 것이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경쟁에서 김응천 감독은 다른 두 감독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인식속에 그의 이름이 가장 크게 기억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혹자는 하이틴 영화의 폭발을 알린 석래명 감독의 <고교얄개>조차도 김응천 감독의 작품이라고 오인하고 있은 걸 보다 보면 얄개영화에서 그가 가지는 파워가 작품의 질보다는 그의 꾸준한 활동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는 다른 두감독에 비해 8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고등학생이나 대학 초년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을 발표했고, 또한 꾸준하게도 낮은 완성도를 유지(?)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모든 영화가 낮은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게중에 몇편은 인상적인 작품이 있는데, 나에겐 <고교 명랑 교실>이 그런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이전의 얄개시리즈와 특별하게 차별점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전의 얄개영화들과 비슷한 플롯 구성은 여전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영화는 여타의 김응천 감독의 영화에 비해 유기적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모범생, 공부, 근면, 성실 등 타의 모범이 될 것을 강조하는 주인공 승현과 진희의 캐릭터도 모범에 대한 강박을 지나치게 강요하지 않아 보기에 편했다. 삼육이 공부를 해야만 하겠다는 동기 설정도 비현실적이긴 하나 그럭저럭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고교 명랑 교실>이 편했다면 그것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장면이 현저히 줄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이전의 영화들이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비판하면서도 따라줄 것을 은근히 강요했다면, 이 영화는 모범에 대한 강박을 학생 스스로 체화하도록 하면서 그들의 눈높이에 다가서려는 시도가 있다고 보여진다. 퇴학이나 정학이니 하는 기존의 클리쉐가 여전히 등장하지만 그 장면들이 지나치게 부각되지 않음으로써 이 영화는 비로소 하이틴 영화가 누구를 위한 영화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이 은폐된 목적의 강요일수는 있다. 더욱 교묘해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응천 감독의 한계일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은 업그레이드 된 연출은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러나 하이틴 영화는 채 성숙하기 전에 안타깝게도 지고 말았다. 문여송 감독과 석래명 감독은 하이틴 영화에서 손을 놓았고, 김응천 감독은 80년대에도 꾸준했지만 동어반복을 하며 오히려 후퇴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고교 명랑 교실>은 걸작은 아니지만 고교 하이틴 영화의 정점에 썩 어울리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개봉 : 1978년 6월 17일 허리우드극장

감독 : 김응천 

출연 : 이승현, 이동진, 이옥미, 임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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