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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서 멜로드라마에 신파라는 이름을 붙일 때 몇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중 하나가 고학하는 가난한 남자를 역시 가난한 여자가 고생고생 해가며 뒷바라지 했더니, 결국 성공한 남자는 부잣집 여자와 결혼해버린다는 이야기. 여기에 버림받은 여자는 남자의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라는 스토리가 더해지면 한국의 신파 멜로드라마의 기본 골격중의 하나가 완성된다. 여기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사랑의 불가능성, 비정함등 이겠지만, 결국은 세상은 이렇게 차갑고 모질더라는 것과 그 속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여자가 살아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하는 하는 것을 에둘러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이렇게 비정하고 차가운 속성을 지닌 것은 아닐 터. 그래서 1973년에 개봉되어 흥행에도 성공한 변장호 감독의 <눈물의 웨딩드레스>는 조금은 새롭게 다가오는 면이 있었다. 스타일적으로야 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스토리를 꽤 재미있게 진행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경찰서에서 처음 만난 고등학교 3학년 영(신영일)에게 경희(오유경)가 세상은 차가운 것만은 아닐 거라고 말할 때, 갑자기 이 영화가 진부한 접근방식을 고집하지는 않을 지도 모르겠다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 생기면서 내 마음이 따뜻해 지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창녀인 경희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영을 대학에 입학시키고,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사라지기로 결심할 때, 영이 경희의 과거를 모두 감싸안기로 결심하면서 그녀를 2년 동안 찾아다니는 내러티브는 서브 플롯으로 제시된 경희의 친구 미애(김창숙), 갱생원의 동료들(사미자, 김지영 등)을 통해 세상을 비관하기만 하며 사는 모습과 대비시키면서 순수한 사랑의 완성과 세상이 차가운 곳만은 아니라는 주제를 쌓아나간다. 

 

그래도 변장호 감독의 <눈물의 웨딩드레스>는 전형적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한국영화의 암흑기라는 70년대 초반에 관객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것은 그나마 매끄러워 보이는 진행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막 유신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멜로드라마로 은폐된 새마을 영화같다는 생각도 더불어 들었다. 변장호 감독의 이 영화에는 결국 시대를 관조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었던 셈이다.


개봉 : 1973년 7월 21일 국도극장

감독 : 변장호 

출연 : 오유경, 신영일, 김창숙, 송재호, 사미자, 황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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