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198분짜리 영화를 한 자리에서 끝까지 본다는게 보통일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해본다.

특히 그 영화가 인디아나 존스도 아니고 카페 느와르라면...

하지만 그래도 이상하게도 잠시 졸긴 했지만 은근히 재미있는 구석이 있네 하게 된다.

그러니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는 내가 재미있게 본 걸까? 아니면 지루하게 본 걸까?

졸았으니 분명 지루한 지점이 있었을 텐데, 의자에서 일어나면서는 그래도 재미있는 구석이 있네라고 생각해 버렸으니... 결국 나는 생각보다는 재미는 있는 영화네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렇다고 해도 내러티브를 제대로 이해한 것도 아니고 영상을 제대로 음미한 것도 아니고, 대사를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도 자신은 없다. 하지만 2시간 78분이라고 우기기도 하는 이 영화의 이미지는 확실하게 눈동자를 밀고 들어와 자리 깔고 드러누운 건 확실한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10년 동안 살아온 서울이라는 공간을 부유하는 카메라가 KinoEye가 되어 익숙한 풍경속에서 걷고 있는 느낌을 전달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더불어 잠깐 졸아서 갑자기 내용이 이상해지는 점프컷의 순간을 인식하지 못한 건 아마 이 영화의 롱테이크 때문이겠거니 한다. 다만 2부에서 정유미가 끔찍하게도 긴 독백을 하는 롱테이크에서는 졸아버려서 그녀의 고민을 들을 기회를 잃어버려 그녀의 고통의 내면까지 다다르지 못한게 아쉽기는 하다고 생각해본다. 그래도 그녀의 고민을 몰라도, 浮雲같은 영수(신하균)의 우울한 표정을 흉내 내며 청계천을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가끔 택배소녀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게 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2.

영수(신하균)는 유부녀이자 제자의 엄마인 미연(문정희)를 사랑하고, 자신의 동료인 미연(김혜나)은 영수를 사랑한다. 유부녀이자 제자의 엄마인 미연이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와서 그만 만나자고 얘기하고, 동료인 미연은 영수가 동료인 자신을 사랑해주길 기대한다. 유부녀이자 제자의 엄마인 미연을 사랑할 수 없는 현실을 깨닫고 영수는 한강에 뛰어든다. 결국 그는 이 추운 날 한강에 뛰어들어 구조요원을 고생시키고 만다..

 

3.

남자친구와 헤어졌는지 버림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청계천 다리 위에서 한없이 기다리고 있는 선화(정유미)를 영수는 만난다. 영수는 그녀의 넋두리를 참을 성 있게 들어주지만, 나는 고정된 롱테이크와 찌질거리는 그녀의 넋두리를 들어주기엔 너무 냉정한 인간이라 잠이 들어버린다. 깨어나니 영수는 선화를 좋아하는 것 같고, 택배소녀는 영수의 콜라를 빼앗아 먹는다. 그리고 선화는 신나는 아랍음악에 맞춰 정말 신나게 춤을 추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남자친구와 함께 떠나버린다. 음악이 내 귀에 캔디다.

 

4.

영수는 한강에 뛰어들었을 때 죽었을까? 아니면 무릎밖에 오지 않는 청계천에 코를 박고 죽은 걸까? 사실 이건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한시간이 넘고 나서야 나타나는 타이틀 시퀀스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백야로 넘어가는 지점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나는 받아들이기로 생각한다. 나도 스스로 놀란다. 졸고 일어났더니 영화가 끝날 때 쯤 타이틀 시퀀스가 나타나고 또 영화 한편정도 되는 길이의 같은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 그래도 3시간 18분 동안 한 20분 정도 밖에 졸지 않았다.

 

5.

카페 느와르에서는 진한 에스프레소를 먹으면서 느와르 영화를 생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카페 느와르에서는 진한 에스프레소를 주문해야 하고 그걸 아들의 방의 난니 모레띠나 금욕적인 킬러의 여정의 이삭 드 번콜처럼 마시면서 유럽 아트무비와 지독한 영화광으로서의 시네필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퀴즈를 풀어야 한다. 이건 이 영화에서, 저건 저 영화에서 봤다고 A4용지에 하나하나 기록해서 ‘참 잘했어요’ 도장까지 받아야 한다. 그래야 이 영화는 다 본거라고 생각해 본다. 198분 동안 1편의 영화를 본 건지, 2편의 영화를 본 건지, 아니면 십몇편의 영화를 본 건지... 나는 2시간 78분동안 생각해본다. 3시간 18분이 아니라 2시간 78분 동안 말이다.

 

6.

카페 느와르는 정성일 감독이 영화광으로서 쓰는 일기장이었다. 나는 바로 눈치챘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한 소녀가 꾸역꾸역 커다란 햄버거를 끝까지 먹는 모습을 고정된 롱테이크로 지켜봐야 했을 때. 나는 바로 눈치를 채버렸다. 이 영화가 아트무비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당연한 거라고?anyway) 그것도 아마 80년대의 타르코프스키나 아니면 그 이전의 고다르나 아니면 그 이전의 아방가르드든 뭐든 상관없이 "ART"라는 이름으로 규정되었던 그 모든 영화들의 위치에 올라서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21세기에 아트는 너무 다양화 되고, 장르가 아트가 되고 있지만 정성일 감독이 생각하는 아트는 이 세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기의 모더니즘시대에 닿아있다는 걸 짐작하고는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카페 느와르를 가볍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그녀가 햄버거를 먹으면서 눈물을 흘렸던가? 생각해보고...그렇다면 별들의 고향에서 이장희가 불러 제끼던 한소녀가 울고있네도 답안지에 추가해야겠다고 다짐한다. 

 

7.

홍상수는 정성일과 어떤 관계가 있어서 직접 인용되고 있을까?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인물들이 모두 문어체같은 느낌으로 말을 하며 뜬금없이 시인이 되어 언어유희를 벌이고, 더군다나 연극같은 느낌을 강하게 풍기면서, 영화의 역사를 끌어들일 때. 정성일은 아마 지금은 홍상수만이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감독이라고 작정을 하고, 김기영 감독의 대사톤을 빌려와 오마주를 바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임권택은 어디에? 오마주. 오떼르. 이름도 비슷한 이 두 단어는 카페 느와르에서 팔고 있는 메뉴다. 이 두 단어를 떠올리지 않으면 카페 느와르는 그야말로 밤으로의 긴 여로가 된다.

 

8.

나는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말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또 너무 단순한 내러티브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분석같은 거 하고 싶지도 않다고 침묵해보기로 한다.. 나름대로 분석같은 거 쉽게 할 수도 있겠지만. 남는 건 그냥 이미지만 즐기기로 한다. 아마 그게 감독으로서의 정성일이 평론가로서의 정성일을 만나는 지점인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그야말로 절묘하게 평론가가 감독이 되어 만든 정석과 같은 영화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알 수 없는 이 글을 요렇게 마무리한다.


개봉 : 2010년 12월 30일 

감독 : 정성일

출연 : 신하균, 문정희, 김혜나, 이성민, 요조, 이용녀, 김상경, 김병옥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