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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효 감독의 <사랑을 빌려드립니다>는 그다지 빌리고 싶진 않은 사랑이더라는 것. 빌리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흥행도 대실패...^^

 

70년대 중반에는 좋은 청춘영화들이 많았다.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이나 김수용 감독의 <내마음의 풍차>등은 하이틴 영화의 틈바구니에서 대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또 다른 청춘영화의 전형을 만들었다. 그런데 <사랑을 빌려 드립니다>는 이들의 장점은 하나도 흡수하지 못하고 그 동안 한국영화의 병페로 지적되어 왔을 법한 클리쉐들만 모아서 뚝딱 청춘영화 한편을 만들어 냈다. 아무튼 망작이라 하더라도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영화도 있을텐데, 이 영화는 후자의 범주에 정확하게 포섭되니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소심한 재벌집 아들 홍욱(송재호)은 돈만 보고 달려드는 여자들과 친구들에게 넌더리가 나 모든 일에 의기소침하다.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최남현)에게 아버지의 정부(도금봉)은 자신의 술집에서 일하는 댄스걸 세화(우연정)을 의도적으로 접근시켜 홍욱을 성숙하게 만들자고 제안한다. 세화는 홍욱을 쉽게 유혹하지만 장난처럼 시작한 그들은 이내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의도와는 반대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그들의 교제는 반대에 부딪치고, 결국 세화는 진정한 사랑을 위해 홍욱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영화적으로 내러티브 자체가 일단 진부하긴 했지만, 더 문제는 주인공 캐릭터의 일관성이 너무 부족한 편이다. 완전 쑥맥에서 사랑을 위해 저돌적으로 변하는 홍욱은 그럭저럭 핍진성을 가지는 편이라고 넘어간다 하더라도, 세화는 아주 성격이 널뛰기를 한다. 거의 산전수전 다겪은 프로급 술집여자로 등장한 후 홍욱과 사랑에 빠지면서부터는 전형적인 청순가련형으로 돌변한다. 만약 이것이 홍욱의 관점으로 보이는 세화의 모습이라면, 홍욱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세화의 본래 성격이 어느정도 지속되어야 된다고 본다. 급기야 홍욱을 좋아하는 여대생들과의 다툼씬에서는 청승만 남아있는 전형적인 한국형 신파드라마의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돌변하는 걸 보다보면 그러고 싶진 않은데 감독의 능력마저 의심하게 되어 버린다. 사실 이 장면에서는 세화가 특유의 깡을 발휘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이후 홍욱의 아버지와의 갈등이나 아버지의 정부와의 대화, 떠나기로 결심하는 것까지 자잘한 인과를 쌓아 드라마를 만드는 대신 급작스런 결말만 보여주는 식이어서 연출을 더욱 빈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쨌거나 청춘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긴 하지만 <사랑을 빌려 드립니다>는 젊은 시절의 불같은 사랑은 한 순간의 일탈일 뿐, 결혼이란 계급에 맞는 사람끼리 부모의 눈높이에 맞춰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향해간다. 설령 패배한다 하더라도 부조리한 현실을 까부수고 싶었던 <바보들의 행진>의 청춘들의 그 대담하고 처절했던 몸짓은 <사랑을 빌려 드립니다>에서는 그저 단순한 ‘치기’로 부정되고 만다.

 

허허~~ 그렇다면 나는 그 사랑 안 빌리고 말겠네....그려~~


개봉 : 1976년 3월 6일 중앙극장

감독 : 김영효

출연 : 송재호, 우연정, 도금봉, 최남현, 현주, 김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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