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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러고 보니 정창화 감독의 이름값에 비해 본 영화가 거의 없다는 걸 새삼 알았다. 홍콩 진출 첫 작품 <천면마녀>를 봤으나 조금 실망했었고, 여전히 <죽음의 다섯손가락>은 보지 않고 있고, 예전 EBS에서 해주는 영화들 중 몇 장면만 본 것이 전부더라는 것. 그래놓고는 정창화 감독이 과대평가 된 건 아닌가 하는 경망스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것. 일단 죄송합니다. 감독님. 왜 이렇게 유난을 떠는고 하니 작정하고 본 그의 영화 중 한편인 1966년 작품 <위험한 청춘>이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60년대라는 시대를 생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세련된 영화라는 생각이다. 재미있는 대중영화를 지향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탄탄한 주제의식도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어 더욱 정창화 감독의 연출력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할 일없고 주먹 좀 쓰는 건달 덕태(신성일)의 누나 옥주(문정숙)가 민전무(허장강)라는 남자에게 임신상태에서 버림 받는다. 누나의 복수를 결심한 덕태는 그에게 똑같이 되갚아주겠다는 생각으로 그의 동생 민영아(문희)를 유혹하여 민전무와 똑같은 방법으로 희롱하고 임신시킨 후 버리려고 한다는 이야기. 그러나...

 

정창화 감독의 <위험한 청춘>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당시의 영화들에 비해 속도감이라고 할 만한 것이 많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편집의 힘 일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보다는 군더더기 없이 진행되는 내러티브에서 찾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물론 덕태와 영아의 만남의 우연성. 인물의 심리변화의 급작성 등이 보이기는 하지만 캐릭터들이 뚜렷한 개성과 개연성을 가지고 있고, 인과를 통한 내러티브 전개가 단점을 커버하며, 적절한 미장센이 화면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면서 재미있는 영화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강하게 돋보이는 주제의식이었다. 영화는 민전무가 덕태의 누나 옥주에게 행한 행위가 동기를 제공하면서, 덕태가 복수라는 미명하에 행하는 행위들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사에서 복수라는 테마가 그다지 긍정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 영화의 결말이 결국은 용서와 화해라는 것은 벌써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용서로 가는 과정이 얼마나 그럴듯한가의 여부인데, <위험한 청춘>은 이부분에서 공감을 얻을 만 했다고 본다. 더불어 덕태가 기어코 영아를 짓밟고 난 후, 죄책감으로 방황하는 순간에서 한국영화 특유의 늘어짐으로 흐트러질수도 있는 내러티브를 영아의 “용서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말 한마디로 순간적으로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팽팽하게 조여 놓고 더불어 주제의식까지 강력하게 전달할 때 정창화 감독의 연출력에 살짝 미소지었다.

 



결국 <위험한 청춘>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용서다. 덕태가 용서하지 못해 다시 한번 비극을 되풀이했다면, 영아는 용서를 통해 비극의 고리를 끊으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누나인 옥주도 소극적인 표출이긴 했지만 민전무를 용서했을 것이다. 물론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나에게로 화살을 돌려도 쉬운일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희생양을 제물로 삼은 복수는 결국 죄책감이라는 미로에 갇히고 만다. 영화속에서 용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깔끔하게 달려온 <위험한 청춘>은 용서라는 화두를 잘 표현했다. 그러나 결국 그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까? 민전무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어코 보여줌으로써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 그렇게 이중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해야만 60년대의 관객들은 만족했는가 보다. 그런데 한번만 더 꼬아보자면, 민전무가 죽지 않으면 덕태와 영아, 누나의 관계가 이상하게 얽혀들어가 버리니 그것도 과히 꼴분견이라 민전무는 죽을 운명이었던가 보다.^^ 어쨌거나 이런 촌스러움이 다만 촌스러움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화면속에 녹아내린다면 시대를 뛰어넘어 작금의 혹은 미래의 관객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는 고전으로 남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개봉 : 1966년 7월 30일 아카데미극장

감독 : 정창화

출연 : 신성일, 문희, 문정숙, 허장강, 최지희, 트위스트김, 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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