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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민 감독의 1965년 작품 <살인마>는 한국공포영화사에서 걸작이라고 불릴만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말로는 잘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왠지 모던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모던하다... 굳이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은데, 딱히 떠오르는 단어도 없으니 일단 모던하다를 대충 해석해봐야 하지 않겠나 싶다. 사전적으로야 현대적인, 현대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그렇다면 나는 영화 <살인마>를 어쩌면 요즘 공포영화와 비교해 봐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다고 느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영화의 스타일 자체가 세련되 보인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전형적인 전근대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는 영화다. 남편 이시목이 양복을 입고 사업을 하는 자본가이고, 서양화가가 등장해 누드모델을 고용해 그림을 그리긴 하지만  왠지 오래전이라는 느낌이 두드러진다. 분명 시대는 1960년대 중반을 지시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영화는 일제시대 정도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고 느꼈다. 더군다나 하얀 소복을 입은 여귀가 등장하여 한풀이를 하고 있고, 그것을 막아내는 것이 보살이라는 설정까지... 고전적이라면 고전적이지 현대적이라고 할 만한 구석은 그다지 없는데도 말이다.

 

당대적으로 고찰해 보자. 이 영화는 우선 구성이 늘어지지 않고 나름 탄탄하게 느껴졌다. 물론 결말을 화가의 일기를 통해 전말을 알게 된다는 설명조의 방식은 약간은 긴장감을 떨어뜨리기도 했지만, 영화를 스피디하게 마무리하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모던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아마 세 여자에게서 나오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우선 시어머니(정애란), 두 번째 아내(이빈화)의 욕망이 아주 구체적이다. 이는 당시의 한국영화에서 주로 보던 여성 캐릭터는 아니다. 시어머니의 성적욕구와 두 번째 아내의 상승욕구는 이 영화를 추동하고 있는 에너지다. 여기에 죽은 아내(도금봉)의 복수 욕구까지 가세하면 이 영화는 그야말로 여자들의 욕망의 전쟁터가 되는 것이다. 더불어 고양이에게 복수를 부탁한다는 설정은 어딘가 애드가 앨런 포를 연상시키면서 서구적인 느낌마저 가세하며 전통적인 한국의 여귀의 한풀이와는 좀 차별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시 서구(미국이나 구라파로 표현되는)의 이미지가 세련의 또 다른 말이었다고 가정해 볼 때, 이 영화가 모던하게 느껴지는 원인중의 하나가 이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다. 더불어 억압되어 나타나곤 하던 여성의 욕망이 구체화되면서 파격을 끌어내면서 고리타분하다는 느낌도 살짝 덜어 준 것도 원인으로 충분한 것 같다. 또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어머니를 연기한 정애란이 보여주던 연기의 파워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주치의(남궁원)와의 애정행각을 통해 보여지는 색기나 고양이가 씐 연기거나 간에 중년을 넘어 노년의 욕망을 보여주는 그녀의 연기는 이 영화의 일등공신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근원적인 사건의 원인이라 할 만한 남편 이시목(이예춘)의 존재감이 애매모호하다는것은 이 영화의 아쉬움이다. 이 영화에서 여자들이 괴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남편을 향한 욕망이 빚어낸 것이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하든지 영화의 결말에서는 의견을 표출해야 했으나, 단지 둘째 부인이 낳은 자신의 아이들을 찾아 보살에게 감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책임감을 회피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또한 당대 영화의 한계처럼 보여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사실 이 영화는 남편을 꼭지점으로 한 여자들의 욕망의 게임이다. 조신한 아내가 되어 남편에게 사랑받으려는 여자, 조신한 어머니가 되어 아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으려 했지만 자신의 성적욕망을 억누르지 못한 여자, 비천한 신분을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과 그의 사랑으로 대체하려 했던 여자라는 설정은 이용민 감독이 당시 여성이라는 존재의 성취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던가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시대의 변종같은 괴물같은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제거되고, 아이들만 살아남으면서 시스템의 균열에는 이르지 못하고 마는 아쉬움을 남겼다.

 

장르적으로 공포영화에서는 뒤집어 엎어버리는 황당하거나 혹은 통쾌한 결말도 시도해 봄직하지만 이용민 감독은 그러질 못했다. 하지만 <살인마>는 캐릭터들의 욕망이 제대로 꿈틀거리는 장을 마련한 한국 공포영화의 새로운 재미로 한자리를 차지하기에 부족함은 없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개봉 : 1965년 8월 12일 국도극장

감독 : 이용민

출연 : 도금봉, 이예춘, 정애란, 이빈화, 남궁원, 추석양, 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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