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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용 감독은 70년 <잃어버린 면사포>로 데뷔한 이후 1980년대까지 최고의 흥행감독이었다. 특히 70년대 중반 한용철과 배수천을 주연으로 선보였던 일련의 액션영화들은 새로운 한국적 액션을 시도했다는 평을 받으며 크게 주목받았다. 이후 80년대에 들어서면서 <피막>이나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등이 베니스와 깐느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예술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도 알려지게 되는데,  80년대는 이두용 감독의 전성시대라 할 만했다.

 

<초분>은 이두용 감독이 해외에서 주목받게 된 일련의 토속적인 소재의 영화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어쩌면 감독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 그가 만든 일련의 액션영화들이 관객의 지지와는 별개로 평단에서는 무국적의 B급 영화라는 무시를 당하자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이고 싶었던 욕망이 깃들어 있는 작품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실제로 <초분>을 보다보면 60년대 문예영화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당시 문예영화는 예술영화로 통칭되던 시절이고 보면, 그의 연출세계가 유현목이나 김수용같은 문예영화의 대가들에게 미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두용은 이만희 감독에게 더 가까이 있는 감독인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이두용의 문예물에는 스릴러나 공포같은 장르적 컨벤션을 많이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분>역시 공포장르의 장점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초분>은 감독의 의욕에 비해서는 조금 심심하게 느껴졌다. 아직 중앙의 권력이 침투하기 전의 외딴섬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유신시절의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지만, 임권택 감독의 <신궁>에 비해 그 효과는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상징보다는 미스터리로서 영화적 재미를 좀 더 추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일례로 <초분>이 제목이기는 하지만 한국인에게도 이국적으로 보이는 초분이라는 장례풍습을 보여주는 방식이 영화의 주 내러티브인 당무당과 누명을 쓴 소돌이 얽혀있는 5년전 살인사건의 진실공방과 잘 얽혀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또한 관광 개발 회사를 등장시키며 산업사회의 논리에 따라 사라지고 있는 지켜야 할 전통이라는 주제 역시 외부인의 시선을 대리할 간수의 역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한국적인 전통이 아니라 이국적인 어떤 것을 보고 있는 느낌을 받게 만들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마지막 장면에서 초분을 지키겠다는 임자의 모습은 사라지는 전통을 지키는 자의 숭고함이 느껴지기 보다는 똥고집을 꺽지 않는 전통의 고리타분함만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여기엔 한국의 전통을 보여 준다는 미명하게 초분 장례 풍습을 지나치게 괴기스럽게 묘사하는 연출의 실책도 한 몫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관객들이 그 이미지에 거부감을 조금이라도 느꼈다면 마지막 장면은 더욱 설득력이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제의 진지함에 대한 치기어린 강박관념을 제외하고 미스테리 장르로서 풀어갔다면 좀 더 완성도 높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품어본다. 


개봉 : 1977년 11월 24일 명보극장

감독 : 이두용

출연 : 김희라, 윤일봉, 정혜경, 나시찬, 엄유신, 강효실, 김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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