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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서의 박노식을 아주 좋아라 한다. 그가 주,조연으로 출연했던 5~60년대의 인상적인 작품들과 그의 연기와 개성을 좋아
한다. 하지만 박노식은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14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그동안 접할 기회가 드물어 한편도 보지 못했는데, 드디어 이번에 1976년 작품 <악인이여 지옥행 열차를 타라>를 보았다. 한국 B급 활극영화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시도되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분명 존재하며, 일부는 잊혀진 걸작의 재발굴이라는 이름으로 칭송되기고 하며, 나 역시 이런 의견에 찬성하고 있다. 더불어 류승환 감독은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로 한국의 B급 활극 영화에 오마쥬까지 바치고 있지 않는가...그러나 한마디로 궁금해져버렸다. 이 영화를 이렇게 만든 이유가...
박노식 감독의 오리지널 <악인이여 지옥행 열차를 타라>를 보고 난 이후의 감정은 한마디로 당황스러움이다. 사실 좋게 보려고 했지만 좋게 봐지지는 않았다. 오프닝 장면은 시한폭탄의 재깍거림과 짙은 부루스풍의 색소폰 연주의 교차편집으로 다소 엉성해 보이긴 해도 충분히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킬 만한 구성이었다고 봤다. 이어지는 문패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하며 복수의 대상을 찾는 박동혁(박노식)의 장면 조차도, 해운대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예지(안보영)가 하야시(최봉)을 죽이는 씬에서 그녀 등의 대충 그린듯한 문신을 보여주면서 슬슬 불안해지더니 급기야 뱀을 이용해 죽이는 장면부터는 이성을 확 마비시키고야 마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박동혁과 예지의 비극적 과거를 밝히고 그들의 복수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보여지는 일련의 행위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왜?라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장면들의 연속. 왜? 예지는 장님인 박동혁에게 뜬금없이 맨손으로 화살을 잡는 훈련을 시키는지, 왜? 예지는 장님인 박동혁에게 운전을 가르치려 하는지... 사실 화살씬은 나중에 그럭저럭 복선으로 작용한다고 쳐도, 굳이 운전까지 박동혁에게 시킬 이유는 없어 보인다. 탈출할 때 예지가 운전하면 더 안전하지 않나? 더욱이 마지막 결말도 뜬금없다. 예지는 박동혁을 사랑하지만 자신이 순결을 지키지 못한 여자이기 때문에 대신 눈만은 순결하다면서 박동혁에게 주고 죽고 마는데, 패션쇼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화려한 패션과 화장은 어떻게 했는지 등등 따지고 들자면이야 말이 안되는게 한두가지가 아닌 망작이라면 망작인 영화였다.
그러나 무슨 매력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걸작으로 칭송하는 사람들도 있을터... 말도 안되는 상황들을 뚝심(?)있게 끌고가는 박력(?) 때문에? 아니면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어이없는 장면들의 나열에 실소를 금치 못해서... 어쨌든 나 역시 너무 황당해서 귀엽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다는 걸 부정하진 못하겠다. 똑같이 망작이라 해도 심형래 영화에는 없는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는 부분도 분명 있다. 어쨌든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 컬트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배우 박노식의 감독작 중 처음으로 본 <악인이여 지옥행 열차를 타라>는 실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다른 작품들을 좀 더 접해본 뒤에 너무 좋아라 하는 배우로서의 박노식을 영화감독 박노식으로서도 좋아라 할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겠다.
개봉 : 1977년 1월 28일 스카라극장
감독 : 박노식
출연 : 박노식, 장동휘, 장혁, 최봉, 노진아, 안보영, 김정훈, 이향, 박용팔, 김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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