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숙이들의 개성시대 - 개성이 부족한 얄숙이들의 세계

<얄숙이들의 개성시대>는 <말괄량이 대행진>의 속편격으로 개봉되었다. 하희라와 이상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말괄량이 대행진>과 내용이 연결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이상아의 경우는 <말괄량이 대행진>의 캐릭터와 겹쳐 있다. 이 영화는 김응천 감독이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만든 마지막 하이틴 영화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에는 그동안 김응천 감독이 만들었던 많은 청춘영화들에서 부분부분 발췌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이런 장치들이 스스로를 패러디해 좀 더 나은 영화적 열정으로 발산되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이래저래 끼워 맞춰 방학시즌에 영화 한편 개봉시키려 했다는 혐의를 지울수는 없을 것 같다.

 

먼저 톰보이로 등장하는 미라(하희라)의 캐릭터는 83년작품인 <대학신입생 오달자의 봄>에서 이미영이 연기했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온다. 게다가 이미영이 직접 언니로 등장하여 남자와 동등해지고 싶다는 미라에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조선시대적 사고를 가르치고 있다. 경아(이상아)의 경우 <말괄량이 대행진>의 전영록과의 뮤직비디오 장면을 그대로 갖다 쓰고 있다. 민규의 간호사 에피소드는 <꽃밭에 나비>에서, 강석현이 이상아와 만나는 아침 조깅장면은 <열아홉살의 가을>에서 그대로 가져다 쓴다. 김응천 감독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총정리 한다는 느낌이 있었을까? 하지만 관객인 내가 보기엔 이상한 꼼수로만 보이니… 나는 정말 불량관객이로구나…

 

10대의 여자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여자는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할 때 아무리 80년대 중반이라 해도 이건 시대에 너무 뒤떨어지는 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역시 김응천 감독은 당대의 청춘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당대의 꼰대를 위한 영화를 만들었구나… 그러므로 김응천 감독에게 청춘영화의 대부라는 호칭을 부여했던 당대의 청소년들은 속아왔던게 틀림없다. 나도 그때 10대였는데… 덩달아 같이 속았다.

 

김응천 감독이 청춘 영화에 많은 공을 들인걸 안다. 60년대 <청춘대학>부터 80년대 후반까지 꾸준하게 만들며 나름 청춘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을 자신의 작품세계로 만들고자 했던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역부족이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한때 좋아했던 감독의 작품세계가 이렇게 마감되었다는 것에 안타까움도 느끼게 된다.

개봉 : 1987년 6월 27일 금성극장/신영극장

감독 : 김응천

출연 : 하희라, 이상아, 민규, 강석현, 백장미, 박암, 김기종, 전영록, 이미영, 문미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