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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몇번의 아름다운
영상과 나의 감성을 녹이는 장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지루했다. 절대사랑이라는 감정을 돋보이게
하기위해 온갖 아름다운 영상 만들기는 정성스럽지만 너무나 익숙한 서사는 영상을 그림엽서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속내를 들여다보니 엄청 꼬롬한 냄새도 진동하기에 거의 3시간
가까이 화면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뜨거운 사막에서 타는 목을 움켜잡고 빨리 오아시스가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꼴이었다.
과연 안소니 밍겔라
감독은 누구에게 '누구나가' 다 아름답다고 느낄 것 같은
이런 비극적 사랑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그러니까 이 영화 자체가 암묵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고객은 누구인가? 감독은 교묘하게 위장한 채 중산층을 위한 광대놀음을 펼친다. 여기서
말하는 중산층이란 사회의 변혁보다는 현상 유지를 통해 자신의 기득권이 훼손되지 않고 언제나 안정적이기를 바라는 서구의 보수적인 부르주아 계층으로
상정하고자 한다.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비굴하리만치 서구의 중산층의 쾌락을 위해 봉사한다. 그들의
감춰진 욕망을 드러내고 그것을 충족시키며 대리만족을 위한 환상을 제공한 후 면죄부마저 선사한다.
그들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자.
감독은 흥정하는 것에는
관심도 없는 철저한 부르주아인 알마시와 캐서린을 통해 그들자신과의 동일시를 위한 장을 마련한다. 그리곤
인간이면 누구나 꿈꿔봄 직한 '나도 저런 격정적인 사랑 한번 해봤으면'
혹은 '불륜의 사랑에 대한 낭만적 동경'에 대한
환상을 그들의 시선을 위한 눈높이에서 펼쳐 놓는다. 어쩔 수 없이 이끌리는 거부할 수 없는 -국가마저 배신 할 정도로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사랑에 대한
낭만성을 대리체험시키며 중산층의 쾌락을 위해 노력한다. 알마시에게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카라바지오 마저
그들의 낭만적 사랑에 취해 자신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지워버리며 동조한다. (그는 없어도 상관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런 불륜은 그들의 세계에선 위험한 균열이다. 가부장적인
체계와 일부일처제로 기초를 세운 성을 한 순간에 무너지게 만드는 댐의 1cm 구멍과 같은 위험이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영화는 이미 끝난 게임에 대한 회상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인
셈이다. 이데올로기를 위협할 삼각관계는 '한때 그랬었지'의 개념으로 밀려난다. 지금 현재에서는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캐서린은 죽었고, 알마시는 살아있는 시체에 불과하다. 이로써 불안과 막연한 죄책감은 소멸되고 안정을 찾은 셈이다.
또한 밍겔라 감독은
또 하나의 판타지에 대한 서비스도 잊지 않는다. 불륜의 사랑 만큼이나 로맨틱한 이국적 사랑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분서주 한다. 이는 서구에서 끈질긴 전통을 가진 오리엔탈리즘을 에두른다. 감독은 한나와 킵의 사랑은 깔끔하게 처리한다. 그들에겐 죄책감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한나의 애인은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일치감치 죽어버렸다. 이로써 일부일처제의 훼손은 없으며 관객에게 이국인과의 사랑은 하나의 유희로만 제시된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랑은 적어도 영화내에서는 성사되면 안된다. 킵과의
결합은 백인으로 이루어진 서구 사회의 정체성에 심각한 괴리를 가져오기 때문이며 그것은 질서의 파괴이며 또한 기득권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킵은 전출명령을 받아 자연스럽게 영화에서 사라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한나가 킵이 있는 곳으로 떠나는 것으로 나오지만 영화는 이미 종결했으며 모든 질서는 다시 제자리를 잡은 후이다.
한나와 킵이 만날 지 안만날지는 관객의 책임을 벗어난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무 부담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질서를
유지해 주려는 밍겔라 감독의 노력은 한나를 알마시의 회상에 전혀 개입 시키지 않음으로써 성사시킨다. 왜냐하면
한나는 그들의 면죄부이기 때문이다. 박애정신으로 똘똘 뭉쳐있는 한나는 오염되지 않은 존재이며 그들의
투사로 동일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사 구조상 한나가 알마시와 캐서린의 과거를 공유하자 알마시는 고맙게도
스스로 죽어준다. 그녀의 박애정신과 휴머니즘은 하나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성공적으로 질서를 복원해 낸다.
결국 안소니 밍겔라
감독은 서구 가부장적 사회를 전혀 훼손시키지 않는 재주를 발휘하면서 중산층의 쾌락을 어루만졌고 그것에 대한 보상은 아카데미 트로피로 돌아왔다.
전반적으로 지루함
속에서도 분명히 그들의 쾌락에 내가 동조하고 아름답다고 느낀 몇 개의 씬이 있었음에도 이런 건조한 평을 해야 하는 건 그 꼬롬한 시선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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