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경태 감독의 <여자의 함정>은 포스터나 광고 문구를 보면 에로물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잔잔한 멜로드라마에 더 가깝다. 절정의 미모를 자랑하는 정윤희가 20대 후반의 성숙한 미모를 과시하고 있고, 70년대 후반부터 나이 어린 여자들의 이상형(?)이라고 할 자상하고 돈 많은 중년 신사로 자주 출연하는 윤일봉이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가 개봉된 1982년은 70년대 후반 인기를 끌었던 호스테스물의 열기가 사그라지고 있을 즈음이다. 그래서인지 여주인공 수현(정윤희)의 직업은 여전히 호스테스로 설정되어 있지만 술집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거의 없는 편이다. 대신 그 자리는 오랫동안 각광(?)받았던 소재라 할 수 있는 유부남 지환(윤일봉)과 그의 부인 경화(김진애)와의 삼각관계와 그 아이로 대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경태 감독은 지나치게 남용되면서 하나의 클리쉐처럼 되어 버린 아이를 매개로 한 주고 받기로 영화를 처리하진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감독은 주관이 뚜렷한 여주인공들을 설정하면서 이전과는 조금은 달라진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인물과 감독의 연출이 작품 자체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이 영화의 플롯이 인물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수현이 결국 불치병으로 죽는다는 설정은 모든 갈등을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역시 너무 안일한 선택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욱이 이런 결말이 영화가 제시했던 여주인공이 가진 주관성을 위해하는 역할도 하고 있는 듯 보여 의도치 않았던 훼손이 발생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 편이다. 결국 순수한 사랑의 완성이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는 <러브 스토리>식의 결말은 이 영화가 당대의 멜로드라마 중 일정한 성취를 이루긴 했지만, 좀 더 새로운 감각의 멜로드라마가 되는 것에 실패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인 것 같다. 아쉽게도 <여자의 함정>은 마무리가 허술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2년에 개봉된 <여자의 함정>은 영화를 보는 내내 진부한 내용이구나 하는 생각은 들면서도 그것이 막연하게 거부감으로만 돌아오지 않는 영상감각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이경태 감독이라는 이름을 또한 새롭게 인식하게 된 작품이다. 그의 영화 중 처음 본 작품이긴 하지만, 그는 분명 80년대 초반... 동시대의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들에 비해 감각이 앞서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고 다른 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이경태 감독은 활동기간에 비해 많은 작품을 남기진 않았다. 영화사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작품도 없다. 그러나 쉽게 잊어도 되는 감독은 아닌 것 같다.
개봉 : 1982년 5월 22일 명보극장
감독 : 이경태
출연 : 정윤희, 윤일봉, 김진애, 황정순, 하재영
'한국영화 > 1980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렁에서 건진 내 딸 - 여류감독이 그려낸 지독한 반항 (0) | 2018.09.22 |
---|---|
하얀미소 - 김수용 감독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 (0) | 2018.09.22 |
도시로 간 처녀 - 부조리함 그녀의 외침 (0) | 2018.09.22 |
레테의 연가 - 여성 관객을 겨냥한 영화 맞나요? (0) | 2018.09.22 |
망령의 웨딩드레스 - 귀신이신가요? (0) | 2018.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