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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이었던 <두만강아 잘 있거라>가 62년 4월에 개봉된 후 1년 4개월만에 네 번째 영화<망부석>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은 데뷔작에서 보여주었던 시원한 활극의 재미를 <망부석>에서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스피디한 내용 전개를 통해, 데뷔작에서 아쉬웠던 내러티브의 산만함을 보완하면서, 스스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실력파임을 충분히 각인시킨다. 물론 영화속에 자신의 존재감을 새겨 넣는 작가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관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재능을 가진 20대의 젊은 감독이었다는 것을 부인하진 못하겠다. 무엇보다도 나는 <망부석>이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임권택 감독의 필모그라피를 통틀어서도 열편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재미있게 본 영화라고 할까...

 

영화는 정확하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정력적인 행보를 보였던 사도세자가 모함에 의해 죽게 되는 것.

2.사가로 쫒겨난 혜빈 홍씨와 정조의 모습.

3.다시 궁궐로 들어온 정조가 화완옹주의 음모를 이겨내고 결국 왕이 되는 것.

영화는 화완옹주의 음모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꽃봉이를 통해 긴장과 멜로를 조성하고, 음모가 어떻게 좌절될 것인가를 유예하면서 재미를 만들어 낸다. 물론 그 속에 숨어있는 이데올로기는 아쉬운 감이 많이 있지만 킬링타임용 오락영화로서는 손색이 없는 구성으로 보인다.

 

<망부석>은 당대 관객의 재미를 위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쉽게 만든 영화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당쟁이나 왕실의 구조적인 문제등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과 그의 아들 정조의 험난한 고난, 그리고 영조의 어리석은 선택에 대한 회한을 중심에 두지만, 무엇보다도 사도세자의 부인 혜빈 홍씨의 조신한 모습과 악의 꽃으로 묘사되는 화완 옹주의 대비는 주플롯 못지 않는 서브 플롯으로 작용하며 재미와 함께 숨은 주제를 함축한다. 제목이 묘사하듯 망부석처럼 사도세자가 묻혀 있는 곳을 바라본다는 전통적인 여인상에 대한 찬사가 주된 목적인 것이다. 궁녀인 꽃봉이의 죽음 역시 정조를 망부석처럼 바라보는 여인상의 연장선인데, 마지막 장면에 정조가 꽃봉이의 무덤에 애도를 바치는 장면을 삽입하는 것과 화환옹주의 비참한 결말의 대비는 이 영화의 주제가 어디에 있는지 확실해지는 장면이다. 그런 의미에서 <망부석>은 역사드라마이면서 지독한 신파 멜로드라마이기도 하다. 그 살벌한 권력 암투 속에서 혜빈 홍씨는 전형적인 삼강오륜속 여인으로만 묘사된다. 그 덕분에 이경희가 맡은 혜빈 홍씨는 영화속에서 가장 밋밋한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그에 비해 화완 옹주역을 맡은 도금봉의 화면 장악력은 단연 돋보인다.  

 

<망부석>은 임권택 감독 스스로 영화적 각성이 없던 시절의 영화라고 말하는 시기에 속해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가부장적 보수주의를 비판없이 수용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초기 영화세계를 구축했던 헐리우드 영화적 재미의 추구라는 그의 욕망이 유감없이 발휘된 영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봉 : 1963년 6월 1일 국도극장

감독 : 임권택

출연 : 김운하, 이경희, 도금봉, 최남현, 신성일, 전계현, 강미애, 방수일, 정애란, 김신재

       이민자, 황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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