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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 생각에 불과하지만 50~60년대 초중반까지의 한국영화에는 강인한 여성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 같다. 그 강인함이라는 것이 거친 남성스러움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일제의 착취와 노동, 그리고 총칼에 쓰러져간 남성들의 자리를 잠시나마 대신할 수 있는 즉, 어떻게 보면 가부장적 면모를 가지고 있거나 그것을 지켜낼 수 있는 여성상을 그리워 한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이후에도 가부장의 자리를 대신하는 어머니, 아들, 딸의 모습을 그리는 한국영화는 대체적으로 88년 이전까지는 지속적인 흐름으로 만들어지고는 했고 관객의 호응도 높았던 것 같다.

 

선 굵은 남성적인 영화를 만든다고 알려진 신상옥 감독의 영화도 알고보면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가 50년대에 만든 대부분의 영화도 최은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신상옥 감독은 그녀들의 삶을 통해 영화적인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1960년에 개봉된 <이생명 다하도록>도 강인한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이다. 한국전쟁을 통과하는 그녀의 모습은 강인함 그자체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도 혜경(최은희)이 고난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둘째딸의 출산과 함께 날아든 남편의 부상소식, 피난하는 과정의 어려움과 둘째딸의 죽음. 피난지에서 노점상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마음 한구석을 찾아든 새로운 로맨스와 그 감정의 억누름, 다시 시작된 서울에서의 희망속에 찾아든 첫째딸의 죽음은 극적이라고 할수밖에 없는 구성이지만, 신상옥 감독은 신파보다는 감정의 적절한 절제로 괜찮은 멜로드라마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마지막 시퀀스에서 굳이 첫째딸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 삶의 의지를 드러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좀 아쉬운 감이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신파를 통해 관객의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보겠다는 계산이었겠지만 아무래도 초중반의 영화의 장점을 제대로 까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영화가 혜경과 남편(김진규)의 관계나 미스터 조(남궁원)와의 감정의 관계를 절제적으로 참 잘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는 어느정도 감정을 절제한 결과라고 생각했고, 이것이 이 영화를 촌스럽지 않게 만들고, 완성도에도 한 몫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서브플롯으로 등장하고 있는 미스터 조와 여동생의 에피소드에서부터 발생한 균열이 뜬금없는 계몽영화의 모양새의 결말이 된 것은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정할 만 했다. 그것은 삶의 희망이라는 주제를 드러내는 감독 나름대로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태 그대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결국 감독은 큰딸의 죽음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관객의 신파적 감수성을 건드리기로 했고, 그런 어려움을 딛고 삶의 의지를 기어이 드러내는 두 주인공을 보여주고야 만다. 그 시절에는 그럴수밖에 없었을까? 지금의 관객인 나에겐 아무래도 군더더기로 보였고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개봉 : 1960년 7월 1일 명보극장

감독 : 신상옥

출연 : 최은희, 김진규, 남궁원, 신성일, 김혜정, 고선애, 전영선, 조항, 이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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