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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감독의 1975년도 작품 <조약돌>은 사실 거의 잊혀진 영화에 가깝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던 영화가 발굴되어 재평가가 이뤄지고 새롭운 걸작으로 자리매김 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아무래도 이 영화는 그런 혜택을 받기에는 언감생심일 것 같다. 혹시 안목이 높은 평론가가 이 영화의 좋은점을 밝혀내고는 둥둥 띄울지도 모르겠지만, 하수에 불과한 구름은 단지 이 영화에서 전형적인 70년대 박정희 정권시절의 영화스러움을 발견하면서 소소하고 신파적 재미를 느끼는것에 만족할 뿐이다.

 

재미있게도 이 영화의 도입부는 이탈리아와 일본의 합작영화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한 <라스트 콘서트 Dedicato a una stella/Last Concert>와 아주 유사하다. 이 영화의 제작시기는 1975년이고 라스트 콘서트는 1976년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보면 단순한 모방은 아닌 것 같다. 거의 동시에 기획되고 촬영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말이다. 그 장면은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은 술집작부 숙(김형자)이 영달(백일섭)을 만나는 시퀀스인데, 정말 신기하게도 비슷하다.

 

<조약돌>의 배경은 아직 현대화되지 못한 어느 섬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선주(이향)의 고깃배를 타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환경 때문에 항상 선주는 마을의 어른으로 행세하고 있고, 마을 사람들은 불평등한 고용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인공 영달(백일섭)은 꼬막 양식을 통해 부를 만들어 선주와의 불평등한 고용관계를 벗어나려고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이야기 구성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숙과 그녀의 일행은 마을 남자들을 선주의 고깃배에 태우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섬에 오게 된다. 영화의 완성도를 별개로 놓고 보자면, 전근대와 근대의 충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그 해결 방식은 역시 당대의 유사한 영화처럼 마을의 가장 부자이면서 노랭이였던 선주가 어떤 계기로 인해 자신의 재산을 기부한다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 영화에서는 선주의 도덕성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거론되는데, 그 과정이 부드럽지 못하고 급작스러운 편이다.

 

이런 사회적인 문제외에 숙과 영달의 사랑이야기도 중요한 소재의 일부다. 우선 영달은 꼬막 양식이라는 근대적 환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일명 깨어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작부들 중에서도 유난히 고고하고 도도해서 그녀들과 차별점을 만들고 있는 숙은 그의 훌륭한 조력자가 된다. 마을 사람들의 편견을 깨트리는 것도 숙의 역할이다. 하지만 영화 초반에 6개월이라는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그녀는 1분전까지 팔팔하다가 1분후에 갑자기 아~~ 외마디 한숨을 쉬며 급사를 하는 신파적 감수성을 표출한다. 그런 점에서 이상언 감독은 잘 진행되는 사건 갑자기 종결시키기에 일가견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완성도를 별개로 치면 개인적으로는 <조약돌>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귀여운 구석도 좀 있는 영화였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는데 지금은 중견배우가 된 김형자의 앳된 모습도 예뻐 보였고, 허장강의 건들거리는 특유의 연기도 자연스러웠다. 이 영화는 그의 유작이다. 그리고 운명의 손에서 한국영화 최초의 키스씬을 연기했던 이향도 무게를 잘 잡아주고 있었고, 그 외 조연급으로 출연한 추석양, 임해림등의 연기도 마음에 들어 큰 재미는 없어도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개봉 : 1975년 12월 20일 중앙극장

감독 : 이상언

출연 : 김형자, 백일섭, 허장강, 이향, 추석양, 백송, 임해림, 정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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