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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의 곡>은 억울하게 죽은 점례의 한이 공포의 원인이 된다. 점례는 고아 출신으로 외롭게 살고 있는데, 어느날 부잣집의 며느리로 들어가게 된다. 시어머니는 손이 귀한 집안이니 부디 아들만 하나 낳아달라고 말하며 친어머니처럼 자상하다. 점례는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부처님에게 감사기도를 드린다. 하지만 그녀의 임신 후 아이와 점례 둘 중 하나만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자애롭던 시어머니 불현 듯 며느리의 목숨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 아이만 살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아버지와 남편도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점례는 아이를 출산하며 억울하게 죽어간다. 이후 원혼이 된 점례의 복수가 시작된다.
줄거리에서 보듯 가장 근본적인 사건의 원인은 전근대적 가부장제라는 제도이다. 그리고 점례의 죽음을 통해 가부장제를 비판하려는 목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보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조금 이상하게 흘러간다.
원혼이 된 점례는 원인의 제공자인 시부모와 남편 대신 그들의 명령을 들을 수 밖에 없었던 의사와 간호사, 회사의 직원에게 나타난다. 물론 그들은 직접적으로 그녀의 육체의 죽음과 연관이 있지만, 사실 명령을 수행할 수 밖에 없는 고용인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결말과 비교해 볼 때 조금은 불공정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조금 더 들어가서 사건의 원인은 가부장제의 폐해라고 이미 밝혔다. 그러므로 귀신이 된 점례의 주공격대상은 바로 그것이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박윤교 감독은 남편을 정신이상인 상태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역시 생존하게 놔두고, 자신의 아들이 25세가 되어 결혼할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그녀의 원혼은 엉뚱하게 다시 자신의 며느리(아들의 처)에게 잠입하여 복수를 꿈꾼다. 왜? 그녀는 25년을 기다려야 했을까?
문득 남편은 정신이 돌아오고, 시어머니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시아버지만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상태다. 결국 점례는 시어머니를 죽이는데는 성공하지만 자신이 있던 절의 주지스님에 의해 복수를 완성하지 못한다. 결국 살아남은 자는 시아버지, 남편, 아들이라는 가장 견고한 가부장제의 수직적 질서이다. 그 질서를 유지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던 시어머니는 모든 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죽으면서 화면에서 쫓겨난다. 그러다 보니 가부장제의 피해자 점례는 결구 가부장제를 다시 견고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자신의 한은 풀어보지도 못한 채 다시 사라지게 되는 헛발질만 한 셈이다.
박윤교 감독은 처음부터 가부장제를 비판을 주제의식으로 깔고 재미있는 공포영화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결과물은 오히려 그것을 더욱 공공히 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분명히 시아버지와 남편의 반성과 뉘우침이 수반되어 있는 가부장의 수직선이라고는 하나... 정작 점례의 한은 풀어주지 못하는 이상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점례는 씨받이외에 무엇이며, 시어머니역시 그러할 것이며, 새로 들어온 며느리도 그러할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점례의 한풀이 일 텐데... 그걸 간과해버린 박윤교 감독은 스스로 가부장제를 비판한다는 것에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어머니의 모습에서 박윤교 감독을 보았다면 너무한 걸까?
박윤교 감독은 한국공포영화사에서 중요한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망령의 곡> 한작품만 봐서는 그냥 공포영화를 전문적으로 좀 많이 만든 감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개봉 : 1980년 4월 17일 대한극장
감독 : 박윤교
출연 : 지미옥, 정세혁, 박암, 전숙, 김기종, 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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