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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2010년대

이끼

구름2da 2018. 9. 20.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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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종상 시상식에서 강우석 감독이 이끼로 감독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곤 기겁을 해버렸다. 감독상이 연출이 뛰어난 사람이 아닌 권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가는 건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대종상이 영화계의 신구세력을 끌어안는 방식이 이런식이라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어느 시상식이나 왈가왈부는 있겠지만 이번 대종상 감독상은 받아들이기에는 호흡곤란이 동반되는 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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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끼가 무지막지하게 못 만든 영화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잘 만든 영화라고 말하기엔 조금 민망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강우석 감독 특유의 설렁설렁 연출이었다. 물론 연출과 재미가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므로 영화까지 재미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꽉 찬 느낌은 부족했지만 미스테리적 요소가 어느 정도 받쳐주고 있어 2시간 40분을 육박하는 러닝타임을 그런대로 지탱시켜주고 있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 재미라는 것이 어디로부터 기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먼저 원작을 읽어보지 못했음을 얘기해야 겠고, 더불어 원작을 가진 영화는 철저하게 영화로만 봐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원작 이끼와 영화 이끼는 내겐 다른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낀 재미의 기원이 혹시 원작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 이유는 강우석 감독이 연출한 영화<이끼>에서 연출이라고 할 만한 부분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심하게는 그나마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영화가 마지막 장면에서 너무 뜬금없는 결론으로 이어지더라는 것이다.

 

이장(정재영)이 자살하고 모든 사건이 종결되고 난 후 유해국(박해일)이 다시 마을을 찾았을 때부터 이영지(유선)가 사건의 중심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하는 그 짧은 시퀀스는 그나마 아슬아슬 지켜낸 조그만 장점까지 까먹는 실로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연출을 했을까? 정말 원작도 이렇게 끝나고 있을까?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원작은 이런 결말을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이런 연출스타일은 전형적인 B급, C급 스릴러 영화에서나 택할 것 같은 초라한 결말이다. 더군다나 이런 방식이 대한민국의 부패의 근원으로서 지목되는 아버지라는 이름들의 전투를 통한 비판의식을 이영지라는 한 여인의 스릴러로 축소시켜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이땅의 부패덩어리들에게 면죄부를 만들어주고 마는 것이다. 아버지로서의 강우석이 아버지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기가 싫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너무 개인적으로 전유해 버린것은 아닌지. 아버지라는 이름을 비판하지 못한다면 그 아들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강우석 감독이 바라는 세상은 이장의 세상이 지속되기를 바랬던 것일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이 영화의 존재가치는 없다. 

 

3

그리고 텍스트를 떠나서 연출스타일적인 면에서도 마지막 장면을 유해국과 이영지의 교차편집으로 해국이 모든 사건의 원인으로 영지의 존재를 깨닫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들도 해국에 이입되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강우석 감독이 대중영화에서 애매모호함을 제거하여 명확한 결론을 도출해 관객들의 혼란을 막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장면이다. 강우석 감독이야 관객이 재미를 느낀다면 영화의 완성도쯤이야 폐기처분할 뚝심(?)이 있는 사람이겠지만, 이 영화의 매력이 그 애매모호함을 유지하는 것에서 비롯될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고 보면 분명 아쉬운 점이라 할 만하다.

 

사실 제작을 겸하고 있는 감독으로서 제작비 회수에 대한 부담을 이해할 수는 있으나 이렇게 영화를 훼손한다는 것은 제작자의 마인드지 감독의 마인드는 아니지 싶다. 원작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외에 좀 더 친절하게 덧붙이고 싶다면 다른 방식을 찾았다면 어땠을까? 기껏 원작을 카피하듯 쫒아가다가 마지막에 그래도 이건 내영화라는 듯 슬쩍 에필로그만 끼워넣는 것도 자존심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결국 믿을 수 없는 결론에 원작을 찾아봤다. 마지막 장면만 봤다. 원작도 결말이 이렇다면 그래 원작이 문제군 하며 수긍할 수 있으니까. 아니나다를까 원작은 그렇지 않았다. 영화 이끼의 결말은 삼류영화감독이나 할 만한 일이니까. 관객들을 쥐락펴락 하는 흥행의 승부사라는 강우석 감독의 이끼가 크게 흥행하지 못한 것은 그가 안이하게 정체되고 있을 때, 이미 관객들은 그만큼 현명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강우석 감독은 다시 심기일전하여 지금을 직시해야 더 훌륭한 흥행영화를 만들게 될 것 이다. 그리고 그때 감독상을 받는다면 충분히 박수 쳐 줄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형편없는 연출로 받은 감독상을 강우석은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다.



개봉 : 2010년 7월 15일

감독 : 강우석

출연 : 정재영, 박해일, 유준상, 유선, 허준호, 유해진, 김상호, 김준배, 강신일, 정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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