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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첫걸음을 확인한다는 건 기분 좋은 긴장을 동반한다.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을 정답이라 여기게 될지 서툰 걸음에 얼굴을 붉히게 될지는 모르지만 호기심과 경외심으로 보게 되는 첫 영화는 남다르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두만강아 잘 있거라>는 한국영화의 아이콘이라 할 만한 임권택 감독의 데뷔작이다. 6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만주 웨스턴의 시작이 이랬을까? 만주에 발을 내딛지 못한 만주 웨스턴으로 임권택 감독은 그 화려한 경력을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가득 채우는 마지막 시퀀스의 전투장면이 화려했다. 스키를 타고 활강하며 진행되는 총싸움은 넓은 화면에 제법 어울렸다고 할까? 시각적 스펙터클에 집중했다는 것은 임권택 감독이 영화의 재미라는 부분에 관심이 많았으며, 초기 영화세계에서 그의 관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순간이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이라는 이야기는 많은 의미를 내포할 수 있고, 독립군과 일본군의 대결을 통한 다양한 액션을 구사할 수 있어 흥행을 생각해야 하는 신인감독의 입장에서는 꽤 매력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보여줄게 많은 액션 시퀀스에서 임권택 감독은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게다가 프롤로그 없이 바로 사건이 터져버리는 도입부도 바로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속도감을 부여한다. 반면 스토리에 있어서는 당대 한국영화가 보여주던 관습을 많이 따르고 있다. 아니 어쩌면 시각적 체험 이외 스토리에 대해서는 그냥 대충 넘어갔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특히 서울의 독립단원들이 만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의 단조로움은 아쉬운 편이다.


조선의 독립이라는 큰 뜻 아래 그들이 모여 있긴 하지만 개별 캐릭터의 개성이 부족하여 크게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은 전투씬 이외의 장면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살짝 지루함을 느끼게 만든다. 갈등상황이라 할 만한 김석훈과 엄앵란의 에피소드는 너무 쉽게 해소되고, 엄앵란과 허장강의 에피소드는 자신을 키워준 삼촌에 대한 고뇌의 순간이 제시되지 않아 비윤리적으로 보일만큼 밋밋하게 해결 된다. 그리고 김석훈과 엄앵란의 연결고리를 할 것처럼 보였던 임신은 하늘로 증발했는지 더 이상의 언급이 없는 것도 이상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주인공 김석훈을 사랑하는 김혜정을 등장 시키면서 뭔가 서브 스토리를 만들 듯 하지만 단순히 엄앵란의 진실을 밝히는 용도로만 활용되면서 그냥 밀물에 쓸려가듯 흐지부지 되는 것도 <두만강아 잘 있거라>가 좀 더 풍부한 영화가 되는 것을 막고 있다.


몰개성의 캐릭터와 화려한 싸움장면이 공존하는 <두만강아 잘 있거라>는 이런저런 아쉬움이 있지만 임권택이라는 신인 감독의 비상을 위한 날개짓이 되기에 부족함은 없는 데뷔작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개봉 : 1962년 2월 4일 국도극장

감독 : 임권택 

출연 : 김석훈, 황해, 문정숙, 엄앵란, 장동휘, 허장강, 박노식, 이대엽, 김혜정, 황정순

       최남현, 김동원, 김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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