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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감독의 1965년 작품 <비무장지대>는 고아인 어린 소년과 소녀를 통해 전쟁의 비극을 말하고 있는 반전영화다. 심정적으로 주인공이 스스로 살아가기에는 약한 어린이들이라는 점에서 동정적인 감정이 많아 앞서고,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어린이들이 주인공이다 보니 끔찍한 현실속에서도 때때로 동화 속 같은 구성을 취하면서 그들의 순수한 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고군분투를 통해, 그들이 왜 저런 고생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원인으로서의 전쟁의 비극을 강화시키고 또한 반전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영화는 두서 없이 바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엄마를 찾아 나선 영아라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비무장지대에서 혼자 살고 있는 남자아이를 만나 의지하며 남쪽으로 엄마를 찾아가는 위험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들이 왜 혼자인지? 부모는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그러나 이런 설명부족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훼손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것은 알레고리로 작용하면서 보다 폭 넓은 상징성을 내포하게 만들고 있다.
박종호 감독은 영화 전체를 통해 소년과 소녀의 여정을 그냥 따르고 있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개입하기를 꺼린다. 그리고 간간히 소년과 소녀가 일으키는 사건을 경유해 실제 다큐멘터리 필름을 삽입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감독은 이 영화가 극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보이길 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6.25전쟁이 갖는 비극성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보겠다는 의욕으로 보였다.
그런 점에서 마치 놀이처럼 보이는 소년과 소녀의 에피소드는 다양하게 알레고리화 되어 나타나고 있고, 특히 그들이 하얀 선을 막아 놓은 곳에서의 대치 에피소드는 직접적으로 분단이라는 상황을 빗대고 있다. 그리고 선을 끊고 서로 끌어안는 장면에서는 통일에의 염원도 강하게 나타난다. 더불어 비무장 지대라는 특수한 공간속에서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공간이 현대 한국사의 가장 비극적 공간임을 인지하게 만든다.
60년대 영화이면서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반전의 메시지를 확보한 것은 아주 훌륭한 시도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막연하게 엄마가 남쪽에 있을 것이라는 설정을 통해 남한의 긍정성을 강조하고, 북한 간첩에 의해 칼을 맞고 죽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북한에 대해 무지막지하고 비인간적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는 작업을 통해 남한사회의 긍정성을 최대한 끌어내고 있다. 아마 이런 점이 당시의 검열을 피할 수 있었던 한 방책이었겠지.
그러나 소년의 죽음과 지뢰밭을 위태하게 걷는 소녀의 마지막 장면은 아무 죄 없는 두 어린 영혼의 고통을 통해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이 땅의 어린이들이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반전의 메시지를 완성한다. 그러므로 전쟁 하자는 말을 누구처럼 새치혀로 쉽게 꺼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피에쓰
이 영화는 원래 극영화 버전과 다큐멘터리 버전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현재 영상자료원에 남아있는 필름은 다큐멘터리 버전(모큐멘터리)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는 개스트로 나와있는 조미령, 남궁원은 등장하지 않는다.
개봉 : 1965년 12월 9일 아카데미극장
감독 : 박상호
출연 : 주민아, 이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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