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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식 감독의 <내 깡패같은 애인>을
생계형 로맨틱 코미디라고 부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영화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두 주인공의 밀고 당기는 사랑게임이
바로 먹고 사는 문제로 시작되니까 말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석사까지 마쳤지만
단지 지방대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으며
젊은날의 삶이 팍팍한 세진(정유미)과
쨍하고 해뜰날을 기대하며 남의 죄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까지
갔다 왔지만 여전히 햇님은 구름에 가린 채 인생이 흐릿하기만 한
생날건달 동철(박중훈)의 모습은 그저 평범한 이웃처럼 친근하게 다가와서
살짝 미소짓게 하지만 곧 나와 별다르지 않는 그들의 고군분투(?)를
보면서 씁쓸한 현실의 한 단면을 되새김질하게 만들더니
기어코 따뜻한 가슴 한가운데로 쓰라린 맛 한방울 떨어뜨려 놓고 만다.
그래도 그 쌉싸름함이 위궤양으로 도지지 않는 것은
2500원짜리 라면을 주문하려고 할 때 분식집이 너무 시끄러워
주문을 못하자 대신 버럭 소리 질러주는 이웃 세입자가 있고,
비오는 날 면접장에 가야하는데 우산이 없어 쩔쩔매도 빗속을 뛰어
넘어지고 기절해도 다시 일어나 기어코 우산을 사오는
이웃 세입자가 있어서일 것이고
무엇보다도 세진과 동철이 단지 결합만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꿈을 같이 꾸고 있다는 것일 테다.
평생 한번 가볼까 말까한 풍경 좋은 곳에서 키스 한번 하는 대신에
한적한 바닷가에서 입맞춤이 등장한다.
생활형 코미디에 걸맞게 조금은 보수적인 아버지가 등장하면서도
신파를 조장하지 않아서 더 감칠맛 나게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내 깡패같은 애인> 바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고
재미있게 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김광식 감독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 보다는 배경에 사회성을 과하지 않게
가미함으로써 좀 더 풍부한 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루저가 되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여자 세진과
이미 루저가 되었지만 벗어나보려는 남자 동철의 고군분투기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동철은 남의 것을 뺏는 건달이지만 의외로
남에게 베푸는 성격으로 등장한다.
박중훈이 정말 뛰어나게 연기해낸 동철은 세진을 구원해내고
자신의 젊은날을 보여주는 듯한 재영(권세인)을 구해내면서
자신의 삶을 구해내는 저력을 보여준다.
사람들을 착취하는 경찰출신의 건달 박반장(정인기)의 캐릭터와
면접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 단지 재미를 위해 장난치는
면접관들은 모양새는 달라도 동일한 존재들처럼 겹쳐 보인다.
세진이 손담비의 토요일밤에를 부르면서 춤을 출 때 그 처절한 몸부림은
작금의 현실이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혹독한가를 재치있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동철이 박반장과의 대결에서 칼을 맞아 쓰러지며 계단위로 보여지는
한줄기 빛을 갈구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의 화면을 통해
사진처럼 아스라하게 구성한 연출도 마음에 들었다.
이 장면에서 필요한 것은 재치보다는 보편적인 상투성이 이끄는
안타까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재치와 전형성을 적절히 구사한 신인감독의 슬기가 마음에 들었다고 할까...
사실 별볼일 없다면 별볼일 없는 동철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세진의 모습을 보다보면 현실적으로 좀 손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더군다나 사랑의 방정식을 짜놓는 방식이 ‘좋아 죽겠어’라는 드러내기 보다는
두사람이 정말 사랑하긴 하는거야 할 정도로 심심하게 그려놓았기 때문에
동철보다는 세진의 입장이 좀 애매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세진보다 하위(?)에 있는 동철이 좀 더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세진의 마음을 그냥 관객들의 상상에 맡길 것
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는데, 영화는 에필로그처럼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장면을
추가해줘서 꽤 괜찮은 결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감독은 세진이 왜 동철에게 끌리는가에 대해 설명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또한 영화속에서 왜 그렇게 비가 자주 왔는지도 설명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관객들이 세진이 속물적인 여자가 아님을
동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안타까워하지 않기를 바랬을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에필로그를 통해 세진과 동철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동철은 세진이 젖지 않도록 해주는 우산같은 남자였던 것이다.
마지막에 세진과 동철이 다시 재회하는 장면에서도 비의 이미지가 반복된다.
세진이 자동세차장 안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비처럼 맞고 있을때
그녀가 젖지 않도록 해주는 것은 그녀의 자가용이지만
그 젖은 자가용을 닦아주는 것은 동철이다.
그러므로 동철은 비에 젖은 그녀를 닦아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재회.
세진처럼 관객들도 동철이 궁금했고,
세진에게 동일화되어 같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마지막 장면은 더욱 따뜻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 장면은 약간 애매모호하게 연출되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혹시 재영만 있는데 세진이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것.
젖은 자신을 말려줄 동철을 상상한 건 아닐까 했지만
재영의 대사 “형님”이 들리면서 “그래 너무 오버하지 말자”하고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내 깡패같은 애인>은 세진이 주인공인 로맨틱 코미디 아닌가?
세진의 시선속에 있는 동철의 모습과 드디어 재회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따뜻한 마음과 약간의 감동을 가져가는 관객을 상상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세진이 처한 삭막한 사회에서 동철의 따뜻한 마음이 중요한
영화였으리라.
동철처럼 사회도 밝아진다면 더 좋을 것이다.
피에쓰
이 영화에서 박중훈의 연기 아주 아주 좋았다.
거의 20여년만에 느껴보는 제대로 된 박중훈표 연기였던듯...
개봉 : 2010년 5월 20일
감독 : 김광식
출연 : 박중훈, 정유미, 박원상, 정인기, 정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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