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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규 감독의 <마음의 고향>을 보고 나면 한편의 서정시를 읽은 듯 차분한 마음이 든다. 더불어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도성의 안타까운 사연에 가슴 한쪽이 묵직해져 온다. 1949년에 개봉된 <마음의 고향>은 아마 광복 이후 4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 중 가장 걸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당시의 영화들이 대부분 유실되어 비교해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걸작이라는 말이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마음의 고향>을 관통하는 정서와 비애감을 드러내는 유려한 카메라와 편집 등 내용과 더불어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1948년에 개봉되었던 최인규의 <독립전야>와 비교해 봤을 때, 그 일취월장한 완성도가 이후 50년대 영화와 비교해봐도 전혀 손색이 없고, 오히려 능가하고 있다.
도성은 자신의 어머니도 서울아씨(최은희)처럼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감독인 윤용규가 이 영화 한편을 남기고 월북한 것은 솔직히 아쉽다. 만약 그가 한국영화계에 남아 있었다면 한국영화의 지형도가 또 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일이다. dvd의 북클릿을 보니 원작 희곡을 쓴 함세덕을 비롯해 도성의 어머니로 나온 여배우 김선영까지 월북했다고 하니, 알게 모르게 북한과 인연이 깊은 작품이기도 하다.
도성을 키운 주지스님(변기종)은 엄격하기만 하다. 어린 도성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결국 도성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전체적으로 <마음의 고향>은 모든 씬에서 그냥 헛투루 버리는 장면이 없이 꽉 짜인 미장센과 대사를 비롯, 촬영에 한형모 감독, 편집은 양주동 감독이 담당하면서 당시 최고의 장인들이 모였고, 일제시대부터 활동해온 변기종, 남승민, 김선영의 훌륭한 연기를 비롯해, 한국전쟁 이후 대배우로 성장하는 최은희가 앳된 얼굴로 등장하고 있고, 도성 역을 맡은 아역 유민도 눈도장을 확실히 찍는다. 일본에서 영화공부를 했다는 윤용규 감독이 당시 한국영화계라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룬 것을 보면, 당대의 일본 감독들인 기노시타 게이스케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도성(유민)은 키가 자라면 어머니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 생각하며 나무에 키를 재어 보곤 한다.
도성(유민)은 항상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이제 12살이 된 도성에게 절의 동자승 생활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 산 밑에 사는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싶지만 엄격하기만 한 주지스님은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고 꾸지람만 한다. 그럴때마다 도성은 뒷산에 올라가 나무에 자신의 키를 맞춰 보곤 한다. 이만큼만 크면 어머니가 데릴러 오실거야 하면서. 그러나 일년이 가고 이년이 가도 어머니는 소식이 없다. 진수 아버지는 그런 도성이 안쓰럽다. 도성의 어머니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을 해주며 도성을 위로해 주곤 한다.
도성의 생각은 아이리스를 사용하여 주관적 시점을 강조한다.
어린 나이에 죽은 자식의 제사를 위해 절을 찾은 서울아씨를 보면서 도성은 어머니가 더욱 그립다. 도성은 자신의 어머니도 서울아씨처럼 예쁠거라고 생각해 본다. 자신의 뒤를 수줍게 따라다니는 도성을 보며 서울아씨는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며 왠지 정이 간다. 도성은 서울아씨가 가지고 있는 깃털부채를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만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생을 엄격히 금하는 주지스님은 새를 잡지 못하게 할 터, 도성의 얘기를 들은 진수아버지는 산비둘기를 잡을 수 있는 덫을 만들어준다. 도성은 서울아씨가 자신의 어머니였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꿈을 꾼다.
도성은 서울아씨가 어머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서울아씨 역시 도성에게 호감을 보이며 양자로 삼을 결심을 한다.
서울아씨는 주지스님에게 도성을 양자로 데려가고 싶다고 얘기한다. 주지스님은 도성의 어머니 이야기를 한다. 그녀가 사냥꾼과 눈이 맞아 도망갔으며, 도성을 버렸다는 것 까지. 그러므로 도성은 업보가 많은 아이이므로 절에서 죄를 씻어내야 한다고 말하며 거부한다. 그러나 서울아씨는 도성에게 필요한 것은 엄격함이 아니라 부드러운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말하며 뜻을 굽히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서울아씨처럼 새깃털로 된 부채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도성의 생각은
결국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서울아씨의 죽은 아들 종철의 제삿날. 도성은 덫에 걸린 산비둘기를 가져다 숨겨 놓는다. 이것을 진수가 보고 있다. 주지스님은 서울아씨에게 도성을 양자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이날 도성을 데려가기 위해 절로 찾아온다. 주지스님은 그녀를 나무라며 돌려보내려 한다. 도성을 만나지도 못하고 뒤돌아선 어머니와 진수아버지가 만난다. 그녀는 도성이 서울아씨의 양자로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아씨의 방으로 찾아간다. 자신의 신세를 애기하며 도성을 데려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서울아씨는 친어머니가 달라는데 어쩔 수 없다며 도성을 포기하는 대신 뒷바라지라도 하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이때 도성이 서울아씨를 어머니라 부르며 방으로 들어온다.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친어머니는 도성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항상 도성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마음씨 좋은 황선달 진수 아버지(최운봉).
하지만 그의 마음 씀씀이도 안타깝게도 도성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데...
뒤늦게 도성을 찾아온 어머니(김선영)는 양자로 가게된 도성의 행복을 빌며
아들이름도 불러 보지 못한 채 뒤돌아서고 만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주지스님의 지나친 엄격함이 좀 야속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적으로는 참 유려하다. 도성의 심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용된 아이리스는 무성영화 시대의 기술이지만 이 영화에서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더군다나 간략한 소품이 영화내에서 스토리에 미치는 영향이라 든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몽타주로서의 편집 등 윤용규 감독의 <마음의 고향>이 이뤄낸 성취는 무척 높은 곳에 닿아있다. 만약 한국전쟁이 없고 이 기류가 계속 이어졌다면 한국영화의 수준은 한 10년은 발전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
절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기로 결심한 도성
절에서 도성의 부재를 알려주는 연출도 첫장면과 수미쌍관을 이루면서 무척 세련되어 보인다. 이제 도성은 절을 떠나 지그재그로 이어진 길을 따라 세상속으로 나아간다. 절에서 마음 고생을 많이 한 도성의 앞길에 항상 축복이 있었으면 바라게 되지만, 후대의 관객으로서 도성이 겪게 될 한국전쟁 (물론 영화를 만들 당시엔 생각지도 못했겠지만)과 격렬했던 현대사를 생각해 보면서 그가 자신의 운명을 잘 개척해 나갔기를...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도성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의 앞길에 축복을 빌어주고 싶다.
개봉 : 1949년 2월 9일 수도극장
감독 : 윤용규
출연 : 변기종, 유민, 오헌룡, 최은희. 최운봉, 김선영, 석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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