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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최인규는 딜레마를 불러오는 감독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막바지인 1940년대 이후 일본의 강제징집이나 식민주의를 찬양하는 영화를 앞장서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영화들이 완성도 면에서도 당대의 영화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재능있는 감독이었던 셈이다. 


그의 재능을 인정하는 만큼 그의 막무가내(?)식의 친일경력이 아쉽기도 하지만, 광복 이후 1946년에 만든 <자유만세>를 보고 있으면 좀 황당해지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1945년 5월에 개봉한 극악의 친일영화 <사랑과 맹서>를 만든 사람이 1년 후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민족영화 운운하며 <자유만세>를 만들어 개봉하는 그 후안무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마저 들게 한다. 그 1년 사이에 자신의 죄과에 대한 어떤 사고의 변환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또한 당대의 영화인들이 친일이라는 원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더군다나 한국영화의 발전이라는 것이 그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친일영화의 선두주자 최인규의 <자유만세>는 광복을 이루기 위한 민족투사들의 노고에 대한 숙연함과 해방이라는 민중적 숙원의 달성에 대한 기쁨이 충만한 영화이기에 더욱 감독의 과거와 겹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그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은 짧은 리뷰를 읽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최인규라는 이름과 자유만세를 만든 그 1년은 나에겐 딜레마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더욱 그 사람이 궁금하다.


사실 자유만세는 당대의 한국을 대표하는 스탶들과 배우들이 모여 만든 기념비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장면이 유실되었고, 장면과 장면 사이에 없어진 장면이 많아 툭툭 튀기도 하지만, 제대로 보존된 시퀀스만 따로 떼어놓고 보더라도 훌륭한 테크닉을 보여준다. 특히 최한중(전창근)이 박성훈(김승호)를 구출하는 시퀀스는 긴박한 사운드의 활용, 촬영과 편집의 리듬등이 모두 좋아 보였다. 이는 이미 그들이 일제강점기부터 상당히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것과도 연관되는 것 같다. 다만 해방 후 일본인들의 철수로 대부분의 기자재가 없어진 열악한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그들이 이미 최고수준의 영화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장인이었음을 다시한번 확인해보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밖에 혜자 위주로 진행되는 정서를 위주로 구축된 장면도 괜찮았다. 혹자는 이 장면들이 보여주는 평화롭고 조용한 화면이 당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최인규의 한계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수긍되는 면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평이 너무 일면적이지는 않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일단 혜자라는 캐릭터는 미향과 함께 영화에 있어서의 러브라인을 보여줌과 동시에 어떤 면에서의 정서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무리 목적이 강한 영화라고 해도 내러티브 구성에서의 이런 여유로운 장면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일제말기라고 해도 간호사들이 배구를 하며 수다를 떨거나, 한가로이 교회를 가지 않았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말이다. 어쨌든 비현실적이라면 비현실적일수도 있겠고 혹은 이런 장면들이 일제강점기를 지나치게 미화할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이해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부분들이 강압적인 일제말기를 오히려 오해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말이다. 그런 장면들을 보며 저때가 좋았는데 라고 생각할 관객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다만 기술적 완성도에 비해 내러티브의 단순함과 감독의 시선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할 거리가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앞에서도 얘기했듯 개인으로서의 최인규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일정부분 영화를 해석하는데 반영되는 걸 어쩔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최한중은 무모하다 할 정도로 민중봉기로 대변될 혁명에 집착하는 면을 보인다. 다른 동료들이 이미 일본의 패망은 기정사실이므로 무모한 희생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비난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최인규의 모습을 대입시킨듯한 최한중이라는 캐릭터는 감독의 페르소나에 다름아니다. 지나친 열성, 그리고 “지금은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가 아니다”라는 대사라든지, 미향의 집에서 하는 “한국사람이라면 나를 도와달라”는 대사등은 너무 과하거나, 안면몰수식의 변명처럼 들리는게 사실이다. 물론 다른 인물들의 평면적 묘사등은 얘기할 것도 없고 말이다.


한국의 역사만큼이나 한국의 영화도 이렇게 친일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정치의 후안무치들처럼 한국영화도 후안무치의 그림자를 껴안았다. 그러므로 부족한 나는 도덕적,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물론 최인규라는 이름에 좀 더 엄격한 것은 사실이다. 최한중을 연기한 전창근 감독, 자유부인의 한형모 감독, 시집가는 날의 이병일 감독과 양주동 감독 등 초기 한국영화계를 이끌었던 감독들도 이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으나 유난히 최인규에게 엄격한 것은 그 이름이 그만큼 강하고 친일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 결국 나는 최인규를 인정할수도 인정하지 않을수도 없다.


개봉 : 1946년 10월 21일 국제극장

감독 : 최인규 

출연 : 전창근, 유계선, 황려희, 김승호, 복혜숙, 독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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