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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천 감독의 1983년 개봉작 <작은 악마 스물두살의 자서전>에 조금 기대를 하고 있었다. 우선 <팔도 사나이>시리즈나 김두한 시리즈등으로 한국 액션영화의 한계보를 차지하고 있는 김효천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었고, 또 어느정도 흥행에도 성공했으므로 재미도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저 즐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름 견디고 볼만은 했다. 하지만, 뭐 거기까지. 문제는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영화에 대한 불만 정도라고나 할까...

 

한국영화를 보면서 종종 의아한 점은 영화를 20년가까이 만든 사람들이 만든 영화라고 하기엔 기본부터 모자른 영화들이 참 많다는 것이다. 이 영화도 그렇게 생각되는 경우였는데, 일단 전체적으로 각본이 조화롭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건은 옴니버스 영화처럼 각 단락마다 분절되어 제시되는데, 물론 사회비판의 성격을 강조하는 것은 알겠으나, 참 영화적으로는 (이말도 좀 추상적이지만 어쨌든) 구성이 허술하다고 밖에 할말이 없을 것 같다. 만약에 이것이 방대한 원작에서 가장 그럴듯한 에피소드만 추출해서 만들어서 그렇게 되었다면 감독의 고민이 너무 부족했음을 탓해야 할까?

 

이 영화는 1980년대 초반에 가장 큰 사회적 이슈가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준다. 영화는 큰 사건을 세가지 정도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에 첫 에피소드는 기자 지망생 다혜(원미경)가 장총찬에게 기사거리를 요청하면서 겪게 되는 인신매매 에피소드다. 시골에서 막 상경한 어린 소녀들을 사창가로 끌어들이는 이야기는 당시 한국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던 소재인데, 이장호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에서도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김효천 감독의 <작은 악마...>에서는 그냥 그랬다더라에서 그친다. 이 에피소드의 목적이 총찬과 다혜의 러브라인의 형성이 주 목적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장총찬이 누나로 부르는 은주(김형자)의 결혼빙자(?)에 관한 에피소드. 외국유학을 떠난 남자친구를 열심히 뒷바라지 했더니 다른 부자집 여자와 결혼해버렸다는 것으로 역시 당시 한국영화에서 즐겨다루고 있는 소재이다. 마지막으로는 명식(정한용)의 불구에 얽힌 에피소드이다. 단지 다리를 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할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를 꼬집고 있다.

 


이렇게 내용적으로는 상당한 사회비판의 메시지가 가득한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당대의 서슬퍼런 전두환 정권의 검열제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비판의 화살을 엉뚱한데로 돌리고 있다는 게 문제가 된다. 분명 한국사회 비판이기는 하나 그 비판의 대상이 지상에 있는 권력이 아닌 기독교적 하느님에게로 뻗어간다. 세상이 이렇게 처참하게 변하고 있는데, 하느님 너는 뭐하고 있느냐는 식이다. 이는 상징을 통한 권력비판(하느님-전두환정권)으로 억지로 읽을수도 있겠지만 영화의 완성도가 밑받침 되지 못하고 있다보니 살짝 실소를 머금게 만들기도 한다.

 

장총찬이라는 주인공의 성격묘사도 참 요즘의 시각으로는 이해가 좀 힘든 구석이 있다. 그는 전형적인 마초다. 이는 김효천 감독의 영화세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인물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그는 항상 정의감에 불타고 있고, 불의에 항의하며, 약한자를 돕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장총찬이라는 인물이 환영을 받는다면 이런 공적인 모습이며, 영웅적인 면모때문일 것이다. 이는 또한 감독이 바라는 전형적으로 올바른 사나이의 이데아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나이가 단지 갖고 싶다는 이유로 강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모습은 참으로 놀랍기도 하다. 이것이 과연 당대의 자연스런 생각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더군다나 영화속에서는 난지도 쓰레기더미속에 버려진 갓난아기에 대한 울분을 통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보며 실소를 금할수 없는게 이전 장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어지고 있는 강간에 대한 묘사가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아기가 강간에 의한 원치않는 임신의 결과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당시엔 미혼모에 대한 시각이 더욱 엄격했을 것이고 말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감독이 정말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이 없구나 싶었다. 버려진 아기는 용서받지 못할 일이지만 여자에 대한 강간은 어쩔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이율배반적 사고가 혹시 결과지상주의로 이어지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럼 하느님도 해결해 주지 않고, 장총찬의 주먹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이 사회를 어쩔것인가? 결국 바른 인간 명식의 고시합격이 보여주듯 정직한 판검사에 대한 기대와 그 밑에서 사나이다운 주먹으로 불의에 맞서는 용기. 더불어 다혜와 명식의 여자친구로 등장하는 여자가 보여주는 순종적이지만 때로는 요부가 되어 줄 수도 있어야 하는 여성의 역할이 올바른 사회를 만든다는 것인지... 그 네사람은 희망에 차서 밤거리를 노래하며 걸어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나는데 살짝 당황스럽다.

 

그리고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야곱은 누구를 낳고 누구는 누구를 낳고 하는 성경구절의 나레이션은 당시의 한국의 기독교가 아주 강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었기도 했겠지만, 비판의 칼날을 받아야 할 대상을 결국 무화시키고 만다. 더불어 일반적인 한국인들과 상황을 보여주는 화면과 함께 등장하는 오프닝에서의 나레이션은 마치 한국인의 근원을 엉뚱하게도 저 먼 이스라엘 땅에서 찾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결국 완성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김효천 감독의 <작은 악마 스물두살의 자서전>은 사회비판의 주제의식마저도 저 먼 하늘나라에서 찾는 우를 범하면서 그냥 그런 영화에 머물고 말았다. 과연 그 원인을 검열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감독의 세계관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어디다 떠 넘길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개봉 : 1983년 7월 9일 명보극장

감독 : 김효천

출연 : 진유영, 원미경, 정한용, 김형자, 유동근, 최희정, 이해룡, 기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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