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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음을 내며 굉장한 속도로 달리는 오토바이가 시점쇼트로 보인다. 이 소리는 한 폭의 동양화처럼 고즈넉해 보이는 시골 마을에 내리는 어둠을 가른다. 마을에 하나 둘 전등이 켜지고 붉은 노을이 사그라질 무렵 막걸리집 ‘돌아온다’의 소박한 간판에 불이 들어온다.
영화 <돌아온다>는 이렇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이미지를 툭 던지면서 시작한다. 막걸리집 처마에는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라는 문구가 달려 있다. 제목처럼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찾고 있다. 경상북도 울주군에서 촬영했다는 영상도 따뜻함을 품고 있다. 여유로운 시골 풍경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그 속에서 인물들은 삶을 살고 화도 내고 용서도 하고 사랑도 한다. 사연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속에서 나의 사연도 한번 되짚어 보게 된다.
사람 좋아 보이는 변사장도 가슴 속 깊이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찾아오는 사람이라고 없을 것 같은 초라한 막걸리집에 주영이 여행가방을 들고 찾아온다. 다섯명의 단골 손님은 찾아온 손님에 놀랄 정도다. 변사장에게 민박은 하지 않느냐며 방을 달라고 한다. 성격 좋아 보이는 주영이지만 커다란 가방을 무슨 보물인양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한다. 변사장은 모처럼 온 외지 손님이 이상하게 신경 쓰인다.
변사장은 치매에 걸려 실종된 아버지와 버리다시피 한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도망간 외국인 아내를 기다리는 남자. 군대간 아들을 기다리는 재일교포 엄마. 손님을 기다린다는 모텔 사장. 부동산 중개를 하는 여자. 잃어버린 아들을 기다리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이 식당의 단골이다. 여기에 어머니를 찾아 헤맨다는 스님이 끼어든다. 그런데 주영은 ‘돌아온다’ 식당에 찾아온다. 주영이 찾아온 사연도 궁금하다.
주영은 변사장이 기다리는 아들의 애인이다. 그녀는 변사장의 마음 속 깊은 상처를 이해했을까?
변사장의 사연은 이렇다. 그는 호텔의 쉐프가 되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떠난 여자가 버리고 간 아들을 손자라고 거둬들인다. 그러나 변사장은 그게 못마땅하다. 자신의 꿈을 위해 다른 건 볼 여력이 없는 것이다. 손자이자 변사장의 아들인 어린 정환은 아버지가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린다. 액자에 표구되어 있던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는 그런 정환의 마음이 담겨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성인이 된 정환은 아버지를 원망한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변사장이 어딘가에 버렸다고 오해하고 있다. 아버지도 잃고 아들도 잃은 변사장은 모든 꿈을 접고 막걸리집에서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주영은 아들 정환의 애인이었다. 그녀가 애지중지 들고 있던 가방에는 정환의 유골이 담겨있었다. 주영은 변사장의 진심을 알고 정환의 유골을 건네준다. 그날 밤 막걸리집 마당으로, 나무 위로, 밤 하늘로 변사장의 비통한 울음이 울린다.
아버지와 어린 정환. 변사장이 기다리는 사람들이자 아픈 생채기
뭔가 보고 나면 따뜻함이 느껴진다. 평화로워 보이는 시골에서 순하디 순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특별할 것 없는 사연도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다. 41회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고 다 걸작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허철 감독의 <돌아온다>는 재미있게 본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도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많은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갈등을 모두 해결하려다 보니 다소 산만해 보인다. 군대에서 아들이 죽는 재일교포 여선생님과 스님을 아들이라 생각하게 되는 치매할머니 에피소드는 좀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차라리 그 시간을 변사장과 아들 혹은 주영과의 관계에 좀 더 할애했으면 좀 더 밀도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허철 감독은 모든 인물들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렇게 작은 행복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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