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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은 영화와 TV드라마에서 가장 대중적인 캐릭터중의 하나다. 그동안 배우만 다를 뿐 비슷한 내용의 영화와 드라마는 끊임없이 만들어졌고, 또 대부분 흥행이나 시청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긴 같은 내용임에도 볼 때마다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게 되는 걸 보면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장희빈이라는 여인의 삶이 그만큼 드라마틱 하긴 한가 보다.
1968년에는 명장 임권택 감독도 장희빈을 소재로 영화로 만들었다. 제목에 요화라는 단어를 사용해 좀 더 강한 인상을 부여하고 싶었던 듯 짐작되지만 영화 자체는 조금은 평범하게 진행되는 편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장희빈에 대해 딱 그만큼의 정보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영화 <요화 장희빈>을 통해서는 재미있는 대중영화를 만들어 흥행을 하겠다는 것 외에 임권택 감독의 야심이라고 할 만한 것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이는 이 영화가 임권택 감독의 스승인 정창화 감독의 61년작 장희빈의 충실한 리메이크가 가장 큰 목표였기 때문은 아닐까? 아직 61년작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결국 오마주가 요화 장희빈의 가장 큰 존재이유일 것 같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가장 큰 흥행 캐릭터인 장희빈을 통해 흥행성공의 꿈까지 꾸었겠지만...
요화라는 제목과는 달리 임권택 감독은 이 영화에서 장희빈을 진정한 사랑을 추구한 로맨티스트로 그리고자 한다. 내레이션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엔딩에서도 이러한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걸로 봐서 이 영화는 일종의 고무신 관객을 위한 멜로드라마다. 그러므로 스타일적인면에서도 장희빈이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정치상황은 비중이크지 않고, 단지 숙종이 미모의 옥정을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옥정은 패악의 길에 빠져들었다는 이야기로 이어간다.
그래서일까? 보통 가장 큰 재미를 부여해 주곤 하는 인현왕후를 모해하는 굿 장면이나 무수리의 에피소드는 후반부에 잠깐 배치되어 있을 뿐, 오히려 초반 숙종과 옥정이 만남과정에 좀 더 집중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물론 얼개가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지 않고, 2시간의 상영시간에 장희빈의 일생을 축약하다보니 사건이 급작스러운 부분이 많긴 하다.
그래서 남정임이 열심히 연기한 임권택 감독의 <요화 장희빈>은 약간은 어정쩡한 영화였다. 표독스런 장희빈을 느끼기엔 후반부가 지나치게 축약되어 있고, 태현실이 참하게 연기한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갈등은 인현왕후의 자애로움만 강조하다 보니 긴장감이 결여되어 있다. 여인들의 전쟁의 배경이라 할 만한 정치사도 지나치게 축약되어 옷만 바꿔 입은 신파 멜로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화 장희빈>은 재미있었다. 임권택 감독은 항상 초기 자신의 영화를 부정하곤 한다. 그리고 이 영화도 그가 부정하는 작품속에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임권택 감독은 아무런 야심도 새겨넣지 않았고, 그로인해 완성도도 높다고 할 수 없은 영화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항상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그는 관객이 돈을 지불하고 맞바꿔가길 원했던 재미를 위해 노력한 것 같다. 내 생각에 임권택 감독은 관객들에게 일정 정도의 지적 만족감의 성취를 주지 못하는 영화에서는 기필코 재미를 주고자 했던 것 같다. 그는 영화판에서 살아 남아 먹고 살기 위해 그랬다고 소박하게 얘기하지만 이건 아무래도 재능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봉 : 1968년 1월 27일 국도극장
감독 : 임권택
출연 : 남정임, 신성일, 태현실, 도금봉, 한은진, 강문, 정애란, 허장강, 김성옥, 방수일, 김칠성, 안인숙, 오경아, 석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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