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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몽으로 데뷔했던 양주남 감독이 1957년에 만든 신파멜로드라마 <모정>을 보면서 60년대 후반의 메가 히트작 <미워도 다시한번>이 많이 생각났다. 아들을 아버지에게 보내려는 여자, 갑작스럽게 나타난 남편의 아이, 그로 인해 외도를 알게 되는 부인의 갈등을 다루는 내용은 고무신 관객으로 통칭되었던 당시의 주부관객들이 가장 확실하게 반응하는 캐릭터들이었을까? 이런 소재는 80년대까지도 지속적으로 변형되며 만들어 진걸 보면 확실히 고정 관객층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미워도 다시한번>은 <모정>의 내용에 인물들의 감정의 증폭을 좀 더 강하게 만들어 리메이크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정>은 화면이 좋았다. 부드러운 톤의 흑백 영상에 드러나는 당대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편집자 출신의 양주남 감독답게 화면의 전환이 그 당시의 영화에 비해 부드럽고 자연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더불어 당시 6~7살 정도 되었을 안성기의 깜찍한 연기는 영화를 한층 더 재미있게 만든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이경희)는 어린 아들 신호(안성기)를 친아버지 학수(이민)에게 보내기로 결심한다. 학수의 부인인 혜옥(조미령)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신호로 인해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배신감에 몸을 떤다. 하지만 의사인 학수는 강원도에 출장중이고, 홀로 집을 지키던 혜옥은 어쩔 수 없이 신호를 맡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호에게 점점 정이 드는 혜옥. 그러나 신호의 어머니는 차마 떠나지 못하고 신호를 그리워하며 주변을 맴돈다.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온 날. 신호는 어머니를 찾아 기차역으로 향하다 철로에 넘어지고 그를 구하다 어머니는 죽는다.
<모정>은 당대의 요구라 할만한 것이 녹아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갈등의 원인인 어린 신호가 6.25전쟁을 피해 피난중의 하룻밤에서 생겼다는 것. 또한 혜옥이 신호를 고아원에 맡기기로 했을 때의 고아원 원장의 말을 통해 볼 때, 수많은 전쟁 고아들과 전쟁 중 발생한 미혼모의 아이들에 대해 좀 열린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에서는 혜옥을 불임여성으로 설정함으로써 미워도 다시한번 보다는 갈등을 골을 많이 피하는 쉬운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남편의 부재 속에서 혜옥의 시선을 통해서만 영화를 진행되기 때문에, 사건의 원인에 대한 다각도의 탐색보다는 단순히 여성들이 좀 더 넓은 아량을 보여주길 바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관객들은 혜옥의 갈등에 일희일비하며 동일시 될 것이고, 신호 어머니의 불행에 가슴 아파하며, 신호의 해맑은 모습에서 행복하기를 기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영시간 대부분 남편을 보여주지 않고, 혜옥의 마음의 갈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채, 신호와 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보다보면, 6.25전쟁이라는 일차적 원인이 좀 희석되고, 이 모든 사건을 여자들이 알아서 수습해주길 바라는 남성의 책임회피도 당시의 일반적인 모습이었을까?
개봉 : 1958년 1월 11일 수도극장
감독 : 양주남
출연 : 조미령, 이경희, 안성기,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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