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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칠인 감독의 <관능의 법칙>은 생각했던 것 보다 괜찮은 영화였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 보다 야하지 않은 영화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은 없는게, 이 영화의 유려한 스토리가 노출에 대한 아쉬움을 아주 가볍게 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유려하다고 느꼈다. 뻔하다면 뻔한 스토리지만 세 주인공의 성격을 명확하게 설정했고, 그 명확한 인물의 성격을 통해 사건이 진행되고, 플롯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영화는 물 흐르듯 진행되었고, 나 역시 부담없이 스토리에 빠져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세 주인공인 신혜(엄정화), 해영(조민수), 미영(문소리)이 신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신파스럽지 않게 표현했다는 것이 좋았다. 성공한 방송 프로듀서인 신혜는 사귀던 남자가 어린 여자와 결혼한 후, 다시 젊은 남자를 만난다. 여기서 충분히 젊은 남자는 자신의 성공을 위한 미끼로 신혜를 활용할 수 있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해영은 사랑하는 남자가 재혼에 대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실망한다. 더군다나 암까지 걸린다. 하지만 이 둘의 스토리도 예전 한국영화의 나쁜 남자 캐릭터로 흘러가지 않는다. 일주일에 세번의 섹스를 요구하는 미영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바람난 남편과 그 해결 방식 역시 진부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것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와 감독의 연출이 옛 한국영화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시점을 적절하게 반영하는데 게으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들이 노쳐녀이든, 나이가 많든, 어쨌든 예전의 엑스세대의 나이대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한국사회는 엑스 세대를 기준으로 무언가 변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관능의 법칙>은 그 엑스 세대의 사고방식을 적절하게 잘 살렸고, 그래서 신파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겠지..
어쨌든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다. 사랑의 보편적 가치를 믿는 영화다. 그런데 예전처럼 남자든 여자든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담보하며 완성하곤 하는 그런 사랑은 아니다. <관능의 법칙>은 제목과는 다르게 섹스는 사랑의 한 부분일 뿐이고, 진정한 사랑의 감정이란 존재하고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사랑을 회의하는 영화가 아니고, 이데아적인 사랑의 가능성을 믿게 하는 영화다. 신혜, 해영, 미영을 통해 다양한 사랑의 소통방식을 보여준다. 사랑이란 모르는 타인이 만나 진정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그 가능성을 믿어보는 영화다. 그래서 <관능의 법칙>이 그려내는 사랑은 같이 손잡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오즈 야스지로식 사랑을 지향하는 그런 사랑이다. 그리고 진정한 우정 역시 사랑의 한 범주임을 분명히 한다. 결국 젊은날의 관능이 삶이라는 연륜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을 때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 완성됨을 보여주는 영화라고나 할까.
권칠인 감독의 <관능의 법칙>은 본의 아니게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관능의 법칙>이 걸작이라는 카테고리로 영화사에 남지는 않겠지만, 어쨌든2014년 현재를 살아가는데 한번쯤 볼 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개봉 : 2014년 2월 13일
감독 : 권칠인
출연 : 엄정화, 문소리, 조민수, 이경영, 이성민, 전혜진, 권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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