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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하이켄루퍼의 <팩토리 걸>을 재미있게 보았다.

이름은 그 누구보다 많이 들어 잘 알고 있는(이름만^^) 앤디 워홀과 60년대 당시의 뉴욕 언더그라운드에 대해 궁금하기도 해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 당시는 순수하게 '아트'라는 단어가 날 것 그대로 살아 숨쉬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사실 요즘은 '아트'라는 던어가 그다지 힘이 없지 않나? 나 역시 '아트'는 이데아에서나 존재할 것 같고, 더 중요한 것은 '아트'라는 이름으로 규정된 틀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쨌든 <팩토리 걸>은 제목 그대로 앤디 워홀이 실험 영화를 만들던 시절 그가 운영하던 스튜디오 <팩토리>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 에디 세즈윅이라는 자유분방한 한 여성의 삶과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에서 하이켄루퍼 감독은 앤디 워홀을 그다지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하진 않는다. 오히려 영화가 끝나면 나쁜 사람이 이라는 인상이 더 강하게 남는다. 반면 에디 세즈윅은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에디를 연기한 시에나 밀러는 정말 예쁘고 에너지가 넘쳤다. 에디를 잘 모르는 나의 눈에는 시에나 밀러가 바로 에디 세즈윅으로 보였다. 그만큼 그녀의 연기는 훌륭했다. 외국배우에게 연기를 잘했다 못했다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영화속의 시에나 밀러에게 만큼은 정말 연기잘한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팩토리 걸>을 보는 내내 무척 재미있었지만 뭔가 약간 씁쓸한 느낌이 자꾸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더라. 그러던 중 이동진이 쓴 글을 읽게 되었는데, 모든것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동진은 <... 그녀의 재능에는 관심 없이, 그저 위선적인 아버지와 이기적인 연인-친구로부터 철저히 착취당한 희생자로만 보려할 때...>라고 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류의 영화들이 대부분 이렇게 [희생자로서의 조력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적으로 로댕의 연인으로 알려진 까미유 끌로델에 관한 브루노 뉘땡의 작품 역시 이러한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그녀들의 삶은 어디에 있는 걸까? 삶의 불행과 희생만 부각시킨다면 그녀들은 정말 로댕과 워홀의 인형일 뿐이지 않았을까?


하이켄루퍼 감독은 좀 더 심하게 이런 시선을 견고화시킨다. 영화의 구조는 죽기 얼마전의 에디의 회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장기 없이 평온한 얼굴의 그녀는 워홀과 어울리던 시절의 진한 화장과 불안한 얼굴과 대비된다. 이건 분명 후회의 시선이며 삶의 부정이다. 에디의 삶이 그녀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불행해졌는지? 아니면 앤디 워홀이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불행했던건지? 관객들은 그녀가 앤디 워홀때문에 예술적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그녀가 선택한 것이었다면, 그녀 삶의 능동적 선택권자가 그녀였다고 당당하게 말한다면 어떨까? 영화속에서 에디는 밥 딜런(영화속에서는 빌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지만)을 쫒아가지 못했다는 걸 가장 큰 실수로 느끼다고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만약 그녀가 밥을 따라갔다면 또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지 말란법도 없지 않을까?


결국 내가 느낀 씁쓸함은 거기에서 연유한 것 같았다. 회상구조로 인한 그녀 삶에 대한 회한의 모습에 더해 죽음에 대한 자막은 그녀 삶의 비극성을 강조할 뿐이다. 더군다나 젊은 나이로 요절해버렸으니, 피워보지도 못한 꽃이 되어 버렸으니, 그 삶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되는건지?


앤디 워홀과의 팩토리 시절은 에디 세즈윅의 삶의 시기 중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였고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노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녀의 비극은 주위의 탓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의 선택때문이었노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희생자로서의 삶보다는 훨씬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나?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희생자로서 그녀를 바라보는 까닭은 그녀의 행위들이 기본적인 도덕개념과 배치되어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길티 플레저라는 개념이 있던데 에디는 은밀한 사적욕구이고 싶은 욕망을 드러냈기 때문에 차라리 희생자가 되는 것이 도덕적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에디 세즈윅 이후 앤디 워홀의 옆구리를 채우는 여자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니코라는 여자다. 그녀는 에디와 어떻게 달랐을까? 에디보다 현명했을까? 에디는 전혀 몰랐지만 니코는 선배가 가지고 있던 레코드판으로 인해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영화에서 보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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