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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표 감독의 <미인>을 보기로 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신중현의 음악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역시 신중현의 음악은 무척 좋았다. 영화음악은 종종 맡았던 신중현이 직접 연기를 한 것은 <미인>이 유일한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이 영화는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단, 손발이 오그라드는 신중현의 연기와 영화 스토리는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코미디를 보듯 즐기는 맛도 좋다.
신중현과 엽전들을 출연시키기 위해 급조되었을 스토리에 대해서는 특별히 말할 건 없지만, 역시 신중현이 극 중에서 연주 하는 장면에서 만큼은 훌륭했다.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고 기타를 튕기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화면을 뚫고 나올 기세다. 이것은 이미 정점에 도달한 예술가를 보는 듯 했고, 저절로 감동이 느껴진다.
더불어 울고 싶어라로 기억하는 이남이의 연주 모습 역시 대단히 섬세해 보였다. 그리고 드럼을 치던 권용남의 훌륭한 모습까지. 이런 장면들을 그냥 비디오로 봤으면 못 보고 지나갔을 수도 있었을텐데, 스크린의 대형화면으로 보니 더욱 실감이 나서 경이롭게 보았다.
하지만 <미인>은 콘서트가 아닌 영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신중현의 보컬을 뒤로 하고 흘러 나오는 난데없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테마곡부터 불안하게 만들더니, 신중현의 상상 속에서 계속 모방되는 <졸업>, <태양은 가득히>, <형사> 등등의 장면과 테마음악들은 신중현의 노래를 듣고 즐기며 보냈을 나이 지긋하신 분들마저 허탈한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들더라는. 나는 허허실실 즐기기는 했지만 역시 달나라로 간 스토리는… 음~~
어쨌든 영화속에서 듣게 된 빗속의 여인도 너무 좋았고, 그 외 제목은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신중현의 히트곡과 신중현과 엽전들의 신들린 듯한 70년대 록 사운드도 너무 좋았다. 다만 영화는 제목이 <미인>인데, 끝까지 노래 <미인>은 나오지 않아 좀 섭섭하긴 했다. 나름 극중에서 신중현이 짝사랑했던 여대생 김미영이 콜걸이었음이 밝혀진 후 그녀를 그리워하던 신중현이 미인을 불렀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2009년 영상자료원의 프로그램이었던 <볼륨을 높여라 : 한국대중음악&그리고 영화> 전에서 상영되었다. 이후로는 볼 방법이 없다. 그때 봐 두길 잘했던 것 같다.
개봉 : 1975년 8월 30일 스카라 극장
감독 : 이형표
출연 : 신중현, 이남이, 권용남,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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