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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남 감독의 36년작 미몽은 현재 필름이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유성영화다. 2008년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안종화 감독의 <청춘의 십자로>가 공개되면서 最古영화 타이틀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유성영화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이니 그 의미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닌 것 같다. 한국최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이 발굴되지 않는 이상 유성영화 최고의 타이틀은 아마도 지속되지 않을까?


미몽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점이 많은 영화였다. 우선 일제 강점기 시기의 근대화된 서울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좀 편집이 필요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길게 보여주는데, 이는 아마 서울의 모습을 상상하는 지방의 관객들을 배려한 것은 아니었을까?(제작자 속마음, 이정도 구경거리면 안보고는 못 배기겠지?^^) 사실 최인규 감독의 집없는 천사를 보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당시의 서울의 모습이 생각보다 현대적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막연하게 옛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당시의 경성(서울)은 암울한 식민지 시기이긴 하지만 서구적 도시의 외양을 일찌감치 취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문학작품이나 후대의 영화를 통해서도 모던걸이나 현대화된 생활양식 등을 접했으면서도 문학작품을 통해서는 활자화된 모습보다 더 촌스럽게, 후대의 영화를 통해서는 고증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당대 서울의 모습을 옛날스럽게 남겨두려는 나의 편견이 크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일제 시대의 명배우였던 문예봉의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팜므 파탈 연기, 50년대 중반까지 활동했던 대표적 연기파 배우인 이금룡의 연기를 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었다. 그리고 딸 정희가 학교에서 받는 교통사고 예방 수업, 백화점 풍경 등 그야말로 한국적 풍경들이 이국적 풍경으로 돌변(?)하여 다가오기도 한다.




애순(문예봉)은 낭비벽이 심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 여자다. 남편(이금룡)은 그런 애순을 나무라지만 오히려 애순은 집을 나가버린다. 백화점에서 만난 건달과 동거를 시작한 애순. 그녀는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그를 부잣집 아들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내 무용발표회에서 만난 무용가에게 반한 애순. 동거하는 건달이 부잣집 아들이 아니라 도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경찰에 신고하고 그를 떠난다. 그리고 떠나는 무용가의 기차를 따라잡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가던 애순은 그 차에 자신의 딸 정희가 교통사고를 당하자 죄책감에 빠진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한 딸 정희의 옆 침대에서 그녀는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는다.


양주남 감독의 미몽은 고고학적 흥미와 가치외에 영화 자체적으로는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일단 애순의 행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그녀의 행동들을 이해하기가 난처해진다. 이는 당대 현대적이라고 하는 여성들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 부정적이었음을 말해준다. 인과적으로 사건이 진행되지 않아 “왜”, “어떻게”라는 생각을 계속 해야만 한다. 그에 더해 영화 자체가 관객들이 애순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에, 너무 명확하게 가정과 자식을 버린 여자는 죽어야 한다는 주제로 몰아가서 아쉽기도 하다. 인물들도 갈등이라는 것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어찌나 주체적이신지~~~


영화에서 몇차례 보여지는 ‘새장속의 새’는 애순의 상태를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하지만 이장면들이 인형의 집을 나오는 노라의 모습이 아니라 결혼한 여자는 새장속의 새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론으로 도달하고 보면 살짝 당황스러워진다. 애순이 왜 가정과 자식을 버릴 정도가 되었는지에 대해 좀 더 설명이 있었더라면 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반면 자연스러운 편집이 돋보이는 몇몇 장면과 연출은 꽤 세련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40년대 초반 일제강점기의 한국영화의 수준은 광복 후의 영화보다도 기술적으로는 훨씬 잘 만든 영화들이다. 이는 아마 오즈 야스지로나 미조구치 겐지가 활동했던 당대 일본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추측해보게 된다.


개봉 : 1936년 10월 25일

감독 : 양주남

출연 : 문예봉, 이금룡, 임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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