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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농부 봉수는 딸 순이의 결혼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벌써 몇 번째 식을 연기하고 있는 중이다. 아들 영호는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집안의 형편이 걱정이다. 여느때처럼 과부집에서는 노름판이 벌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봉수에게 운이 붙었는지 친구들의 돈을 몽땅 다 따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봉수는 양심의 가책이 생겨 돈을 돌려 주려한다. 그런데 과부의 남편 노릇을 하는 사기꾼 억조가 봉수를 살살 꾀여 그 돈을 자신이 모조리 다 따버린다. 더욱 살기가 힘들어진 봉수는 서울에서 구제품을 떼다 장사를 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이것도 그만 사기를 당해 돈을 몽땅 날려버리고 만다. 눈앞이 깜깜하고 상심에 빠진 그날 봉수는 억조가 흘린 돈을 줍게 되고, 둘은 티격태격 하다 그만 억조가 죽고 만다. 다시 그 돈은 영호의 애인인 옥경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이로 인해 영호와 옥경은 억조의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게 된다. 아들 영호가 잡혀 가는 기차를 쫓아가며 봉수는 억장이 무너진다.

 

50년대 후반 피폐한 농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과감없이 드러낸 작품이다. 마치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영화들의 느낌이다. 김소동 감독은 농촌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모든 사건에 돈과 가난을 강조한다. 돈은 모든 등장인물들의 삶의 쟁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딸의 혼수자금이 없거나, 노름을 하거나, 장사를 하거나, 사채를 하거나 말이다. 돈이란 그들에게 삶 그 자체다. 결국 이 영화의 주인공은 돈 그 자체. 한국전쟁 이후 본격적인 자본주의 사회로 들어선 한국에서 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가난해도 돈에 구속받지 않겠다고 결심한 영호는 결국 살인 누명을 쓴다.


이 영화에서 의미심장하게 볼 것은 돈이 인물들을 어떻게 구속하는가다. 돈이 사람 혹은 인물을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억조의 돈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며, 그 돈이 어떻게 교환되면서 인물들을 하나 둘씩 나락으로 빠뜨리는가 하는 것이다. 어리석기라면 두말할 나위 없는 봉수가 결국 돈에 굴복해가는 과정은, 현대화 혹은 서둘러 자본주의화 되지 못한 인물의 비애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결국 그의 무능함은 아들을 살인자로 만든 셈이다. 억조 역시 죽음밖에 남는 것이 없다. 돈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인생이란 그렇게 비극이다.

 

1958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돈이 만든 탐욕의 아가리는 더욱 영악해져 산 입에도 거미줄을 기어이 치고야 마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개봉 : 1958년 3월 9일 국제극장

감독 : 김소동

출연 : 김승호, 최남현, 최은희, 김진규, 정애란, 황정순, 정민, 김칠성, 전택이, 노경희, 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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