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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시타 게이스케 감독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가슴 한 구석에 바람 한줄기 지나갈 길을 만드는 것 같다. 영화가 끝나면... 스산한 바람 한줄기 휙~~ 하고 지나간다. 감성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육군>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군국주의가 한창이던 1944년 군 홍보영화처럼 만들어 놓고는 보고 났더니 반전의 메시지가 조용한 폭풍처럼 달려드는 영화가 바로 <육군>이다. 이 영화를 만든 이후 기노시타 감독은 활동에 제약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기노시타 게이스케 감독은 일본인이라고 불리며 일본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들이 일본이라는 땅에서 칼의 역사를 살아냈다는 것. 그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비극을 가슴에 품는 법을 터득해 냈다는 것을 존중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수동성이 일본을 군국주의의 나라로 만들어 피바람을 몰고 온 것은 아닌가 하는 뼈아픈 후회까지. 조용한 그의 영화안에서 독백이 되어 크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은 지독한 전장의 한가운데서 모두 ‘예스’라고 얘기할 때, 혼자 ‘노’라고 할 수 있었던 그의 용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청일전쟁이 일어난다. 도모조노는 일본에 대한 외세의 굴욕적인 간섭에 울분을 토하지만 아직은 일본의 힘이 약하다는 자각을 하고, 아들인 다카키 도모히코가 육군사관학교에 가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놓고 죽는다.
다시 시간은 흘러 러일전쟁이 일어난다. 도모히코는 전쟁에서 싸우다 영광스럽게 전사하고 싶어하지만 몸이 약해 항상 병원신세만 지게되는 자신을 책망한다. 도모히코는 자신의 아버지 도모조노처럼 아들인 신타로에게 희망을 걸고 그를 애국심이 투철한 청년으로 키우려고 한다.
이제 2차대전이 일어난다. 모든 일본인들은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죽는 걸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아들이 죽었다고 슬퍼해도 안될 정도로 경직되어 간다. 이런 와중에 군대에 간 신타로에게 징집영장이 나오지 않자 도모히코는 좌불안석이다. 드디어 신타로에게 징집영장이 날라오고, 가족들은 모처럼 즐겁게 저녁식사를 한다. 그러나 웃음 속에 숨어 있는 묘한 감정을 기노시타 감독은 놓치지 않는다. 아들은 곧 죽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애써 슬픔을 감추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은 천왕에게 잠시 빌려온 것이니 당연히 천왕에게 다시 돌려줘야”한다고 말한다.
드디어 출정식. 환송회에 나가기 않고 어머니는 집안 청소를 하고 있다. 이웃집 여자가 왜 전송하러 가지 않느냐고 하자 어머니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출정의 나팔소리가 다가오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거리고 뛰어 나간다. 수많은 군인의 대열에서 아들의 모습을 찾기 위해 고개를 내밀고 종종 뛰어다닌다. 드디어 발견한 아들의 얼굴.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이려는 듯 어깨를 펴고 활짝 웃어주는 아들. 아들은 사지로 떠나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한다.
아~~ 가슴이 시려온다. 일본인의 비극이란 이런 것일까? 다카키 도모히코는 일본 군국주의가 만들어낸 상징적인 인물로 당시 전체 일본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맹목적인 천왕에 대한 복종과 강요된 애국심을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또한 기노시타 감독은 영화의 시작을 사무라이 시대의 막바지에서 시작함으로써 일본이 전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비극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들의 역사는 칼의 역사였고, 전쟁이라는 것은 일상이었다는 것. 그들은 그것에 대해 회의할 여유조차 없었다는 것. 결국 절대권력이 만든 허상에 놀아났을 뿐인 일본인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 이런 반전영화를 서슬퍼런 그 시절에 뚝심있게 내 놓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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