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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시타 게이스케 감독의 영화는 영상자료원의 <3K, 3인의 일본 거장전>에서 본 44년작 <육군>과 59년작 <바람에 날리는 눈> 두편밖에 보지 못했지만, 꽤 서정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구나 싶었다. 군국주의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에 시침 뚝 떼고 만들어낸 반전영화 <육군>은 흥분하지 않고 조용, 조용 전쟁의 광기가 어떻게 일본인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갔던가를 이야기 하고 있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그리고 신파 멜로드라마라고 할 <바람에 날리는 눈>을 보면서도 일본의 시골 풍경이 우리나라의 풍경과 무척 흡사하구나 생각하면서, 그 쓸쓸한 늦가을의 풍경속에 고즈넉하게 젖어오는 정조나 부모님들이 젊은시절 찍은 칼라사진의 색조를 닮아 있는 촬영, 그리고 체념을 넘어선 쓸쓸한 표정의 인물들을 보노라면 왠지 모를 서글픔이 가슴 가득 와 닿는 그런 영화였다.
하루코는 소작인의 딸이지만 지주의 둘째 아들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들은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채 동반자살로 마감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하루코 혼자 살아남아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아들 스테오를 낳는다. 시댁에서 하루코와 스테오는 시부모의 미움을 받으며 살게 되지만, 왠일인지 하루코는 그 힘든 삶을 고스란히 감내해 낸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스테오는 18살이 된다. 그는 사촌누이인 사쿠라를 사랑하게 된다. 할버지와 할머니의 지독한 구박속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달래준 누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가세가 기운 집안에서 할머니는 사쿠라를 명문가에 시집보내 체면을 세우려 한다.
하루코는 스테오의 불가능한 사랑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가슴 아파 한다. 하루코는 그 구박을 받으며 집을 떠나지 않은 이유를 속죄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사쿠라가 시집가고 나면 어디든지 스테오와 함께 떠나겠다고 말한다. 시집가기 전날, 사쿠라도 스테오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자신들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한다. 사쿠라가 시집가는 날. 하루코와 스테오도 길을 떠난다. 이때 맑은날이지만 어디선가 바람에 휩쓸려 날아온 눈이 날려와 母子를 위로한다.
담담한 수채화같은 영화다. 기노시타 감독은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인물들의 삶에 개입조차 하지 않는다. 일본의 50년대 시골풍경은 흡사 우리나라의 들판의 모습처럼 보일 정도로 친근했다. 그 풍광을 아름답게 훓어내는 촬영은 오래된 칼라사진처럼 색바랜 빛을 내며 추억을 상기시킨다. 하루코가 왜 시댁을 떠나지 않고 고통을 감내하고, 아들에게 마저 그 고통을 짊어지게 했는지는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것이 속죄하는 것이라고 말은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이 극적인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어쩌면 맑은 날 어디선가 날아온 눈처럼 어디선가 왔다가 또 어딘가로 가는 그런 것인가보다 하며 하루코와 스테오 모자의 행복을 빌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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