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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감독의 타락천사는 사라짐에 대한 그리움의 토로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서 존재하면서도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단 한명의 개별자로 살아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같은 공간에 서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율배반은 왕가위 감독의 타락천사를 휘감고 도는 주제이다. 


다른 시간속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아둥바둥거린다. 그것이 영화속에서는 팀이 되기 위해 혹은 연인이 되기 위해 애를 쓰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첫 장면은 우리가 아직도 팀인지 확인하는 장면으로, 마지막 장면은 팀을 이루지 못하는 인간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팀을 이룬다는 것은 서로에게 의미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타락천사의 등장인물들은 킬러를 제외하고 모두 서로에게 의미가 되려고 애쓴다. 이가흔은 킬러의 집을 청소하며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킬러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일거수일투족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킬러가 자신의 곁에서 사라지는 것 즉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각인시키는 방법은 끊임없이 일거리를 물어다 주는 것이다. 금성무의 캐릭터는 이러한 의미찾기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말을 하지 못한다. 말을 하지 못하면 상대방에게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드러냄의 방법으로 거의 슬랩스틱화된 황당한 행동을 선택한다. 그것은 막문위나 양채니도 마찬가지이다. 양채니가 거의 미친듯이 금발령을 찾아다니는 것은 자기자신을 찾으려는 것이며 흔적을 남기려는 몸짓이다. 막문위가 비속에서 미친듯이 웃어대거나 하는 과장된 몸짓 역시 마찬가지이다. 결국 과장된 그들의 모습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신의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하는 몸부림이며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안간힘이다. 


결국 왕가위 감독은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에서는 서로의 의미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의미의 발생은 비디오캠코더라는 제 3의 물건에 의해 획득된다. 인간의 기억은 금세 사라진다. 막문위는 떠나려는 킬러에게 자신의 의미 혹은 흔적을 자신의 얼굴의 점과 깨물은 팔의 자국으로 각인시키려고 한다. 금성무는 그녀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각인시키려 한다. 그러나 킬러는 죽는다. 킬러의 기억은 그것으로 끝이며 그렇게 흔적을 만들고 싶어했던 그들의 의미는 그것으로 사라진다. 또한 양채니는 금성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인간의 기억이란 이렇게 믿을만한 물건이 못된다. 그러나 비디오캠코더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추억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킬러의 죽음은 인간존재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가흔이 금성무의 오토바이를 타고 킬러에게 다가가기 위해 질주하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를 되고 싶은 인간의 몸부림인 것이다.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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