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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마지막 10년이 시작되면서 에릭 로샹은 동정없는 세상 한편으로 프랑스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만큼 동정없는 세상은 힘이 있는 영화다. 고학력이면서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는 이뽀라는 실업자의 생활을 통해 감독은 고도로 발전했다고 하는 이 세상이 젊은이들에 과연 무엇을 주었는가?를 보여준다. 그 희망없어 보임을 통해 에릭 로샹은 세상을 향한 분노를 표출한다.
90년대 접어들면서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는 붕괴했고 그로 인한 유럽의 통합은 과속화됨으로써 유럽은 거대한 시장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 자본주의는 가속도를 내고 달린다. 이렇듯 급박한 이데올로기의 붕괴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감독은 시선을 던진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그동안 프랑스에서 유지되어 왔던 자본주의라는 것이 아무것도 성취해 낸 것이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결국엔 가장 순수한 감정인 사랑마저도 거래의 대상 혹은 가벼운 유희로 만들어버린 채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는 완성되지 못한 도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에릭 로샹감독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자조적인 목소리로 바로 폭탄을 터트리며 관객을 자신의 호흡속으로 끌어들인다.
"누구에게 화라도 낼 수 있다면
우리에게 삶의 목적이라는 게 있다면
우리에겐 뭐가 있지?
새로운 내일? 거대한 유럽시장?
아무것도 없어
남은 건 사랑밖에 없고 그것처럼 힘든 것도 없다. "
이것은 체념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꾸준히 진행되어 왔던 자본주의의 발전이 물질적 풍요도 가져다 주지 못했을 뿐더러 그 물질마저 소수가 다 차지해 버렸다. 더구나 프랑스가 젊은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고급 학력의 실업밖에 없다. 결국 희망없이 살아가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골방에 쳐박혀 포커를 하고 마약을 판매하는 것 뿐인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붕괴했고 세계의 질서는 자본주의로 가속화된다. 젊은이들의 이상향이었던 공산주의 사상은 한낱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나라인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만 하는 것처럼 이 세상의 젊은이들도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며 사랑해야 할 것이다. 결국 감독은 그토록 꿈꾸어왔던 공산주의는 유토피아적 이상향으로만 남게 될 것이며 한낱 그리움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것에 대해 울분을 통해내는 것이다. 미국땅에서 서로 재회하지 못하는 이뽀와 나탈리의 모습은 이제 적자생존의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해서 더욱 경쟁에 시달리며 도구로 전락할 것이며 삶의 목적조차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될 젊은이들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다. 마지막 미국 공항에서의 장면을 보자. 결국 이뽀는 사랑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으로 왔지만, 그래서 이런 세상에 남는 건 사랑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싶어하지만 자본주의에서의 사랑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끔찍하리 만치 사실적으로 보여줄 뿐이며, 두명의 실업자 이뽀와 그의 친구 알베르의 삶 역시 별로 나아질 것 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프랑스에서처럼 자동차 위에 앉아 세상을 바라볼 뿐인 것이다. 정말 한치의 동정도 없는 이 세상을...
<피에쓰>
에릭 로샹 감독은 이 작품 이후 내놓은 영화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요즘은 아예 사라져버렸는지 소식을 들을 수 조차 없다. 그의 재능이 동정 없는 세상이란 이 데뷔작 한편에서 모두 소진되어 버렸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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