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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연히 부베의 연인의 그 유명한 연주곡을 듣게 되었는데, 무척 좋았다. 영화도 한번 챙겨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리뷰를 찾아보니 마라와 부베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라는게 대부분이다. 영화는 무척 재미있게 보았고 적재적소에서 변주되는 음악 역시 무척 좋았다. 하지만 마라의 지고지순한 순정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녀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부베에 대한 마라의 행동은 사랑이 아니라 의무감에서 비롯된 희생이라고 느껴졌다. 부베에 대한 그녀의 희생이 그녀의 행복을 14년 뒤로 -영화 속에서는 이미 7년이 지났으므로 7년만 더 참으면 되겠지만- 유보하고 있는 그 상황을 그저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감동만 받고 있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혹시 그 감동이 그녀의 행복보다는 남자를 위해 희생하고 인내하는 전통적 여인상에 대한 무의식적 동조는 아닐까 조심스러워 지기도 한다.
영화는 회상구조로 되어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2주에 한번씩 부베를 면회가는 마라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 표정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가는 밝은 모습보다는 쓸쓸함이 더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회상을 통해 그녀의 밝고 날 것 그대로의 시골처녀의 모습에서 부베의 도피, 도시에서의 삶, 스테파노와의 만남을 통해 점차 변해가는 모습을 스케치한다. 그리고 부베와 스테파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 분명 마라는 부베보다는 스테파노를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마라는 부베를 선택한다. 그건 2차대전이 막 끝난 혼란한 이탈리아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감독은 그러한 선택을 한 마라의 희생을 존중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영화속 영화로 <애수>가 나온 것은 비비안 리처럼 살 필요없다는 감독의 무언의 메시지는 아닐지? 비비안 리의 비극을 마라가 굳이 따를 필요는 없는 것인데... 옛 연인에 대한 의무감이냐,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냐의 선택의 기로에서 마라는 관습을 택한 것이다. 부베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이제 사랑이라기 보다는 의무감으로 돌변해 있다. 그러므로 미래에 이루어질 두사람의 결합이 오히려 더 불안해 질수도 있는 것이다. 루이지 코멘치니 감독 역시 마라의 사랑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감독은 회상이 끝난 현재의 시점에서 마라가 스테파노를 만나게 함으로써 한번 더 강조한다고 보여진다. 안타깝게 헤어진 연인의 해후로 보이는 낭만적인 장면이다. 그들은 대회를 나눈다. 마라의 행복이 14년이 유예된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다음으로 스테파노의 결혼에 대해 얘기한다. 스테파노는 원래 사귀던 옛애인과 결혼하지 않았다는 말에 마라는 흠찟 놀란다. 그녀의 낭만적 사랑은 의미를 상실한다. 스테파노가 원래의 애인과 결혼했다면 그녀의 희생은 보상 받았을수도 있지만 루이지 코멘치니 감독은 결코 마라의 희생을 존중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라는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외로움을 감추고 있는 여인이었고, 스테파노는 현실적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마라의 모습이 더욱 쓸쓸하게 보인다. 마음 아프게도 말이다. 20대 중반의 절정의 미모를 과시하는 끌라우디아 까르디날레의 명연으로 더욱 마라의 상실감이 마음을 후벼판다.
끌라우디아 까르디날레 정말 예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서 30대의 농염한 미모도 아름다웠지만 부베의 연인에서는 정말 환상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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