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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시의 영화는 나와 핀트가 좀 안맞다고 늘 생각했다.

도통 그의 영화에 남들만큼 열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국보다 낯선은 내용은 저 만치 떠나가며 이미지만 남겨놓았고,

그 외 지상의 밤은 수다속에서 길을 잃었고

부산영화제에서 본 데드맨은 그냥 잠들어버렸다.

브로큰 플라워는 물라테 아스타케의 음악만 남아 있다.

그 외는 찾아볼 생각도 안하는 감독이 바로 짐 자무시인데...

1999년 작품 <고스트 독:사무라의 길>에서야 비로소 아주 큰 인상을 받았다.

이제 다시 짐 자무시의 영화를 본다면 좀 더 새롭게 받아들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각설하고

왜 지금 사무라이일까?

이제는 사라진 일본의 전통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그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근심인 것 같았다.

사무라이가 주군을 대하는 방식은 죽음을 동반할 정도로 강렬한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영화는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흑인 킬러 고스트 독이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주군은 바로 노쇠한 갱단의 이인자쯤 되는 루이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무조전적인 복종은 어쩐지 조금 코믹하기도 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아마도 동양의 정신이라고 할 사무라이의 ‘이데아’가 서구에서 맹목적으로 수용된

모양새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생각에 짐 자무시도 이런 어긋남을 인지하고 고스트 독

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사무라이의 길 외에 영화속에 등장하는 라쇼몽이라는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서브 플롯을 만들어 낸다. 구로사와 아끼라의 영화로 잘 알려지기도 한 

라쇼몽이라는 책은 고스트 독을 보고 있는 현대의 관객들이 충분히 그 내용을 인지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좀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미장센이 될 것인데, 자무시 감독은

<나의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 것 같다.

 

라쇼몽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른 네명의 인물이 다 다르게 바라본다는 이야기로

그것은 사물을 어떤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진다는 어떻게 보면 현대적인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이 영화에서

관점을 강조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고스트 독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인 사무라이적

삶에 대한 비판임과 동시에 반성이기도 할 것이다.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는 고스트 독은

그 주군에게 죽음을 당한다. 그런데 그것은 사무라이의 길에 나왔던 죽음의 길에 근거하고,

죽음에 대해 명상하는 그런 죽음이 아니라 배신행위에 가깝다. 결국 그의 죽음은 주군의

죽음에 대해 할복하는 명예로운 죽음이 아니라 개죽음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고스트 독이 사무라의 길을 라쇼몽이 제시했던 다양한 관점을 통해 자신과

시대에 맞게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망할 것은 없다. 자무시 감독은 친분을 쌓았던 흑인꼬마에게 그의 책을 모두

읽도록 하지 않는가?

나는 영화속에서 책의 교환이 참 중요하게 느껴졌다.

고스트 독은 사무라이의 길을 읽고 라쇼몽을 읽었다.

흑인 꼬마는 라쇼몽을 먼저 읽고 사무라이의 길을 읽게 된다.

고스트 독이 미련스럽게 고대의 방식을 가져오려 했다면, 꼬마는 사무라이의 길을 다양한

관점을 현대적으로 내재화 할 수 있을것이며, 그것이 희망을 꿈꿀수 있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볼때 라쇼몽만 읽은 보스의 딸의 행동의 결말도 참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라쇼몽과 연관된 얘기가 길어졌는데 결국 고스트 독은 관계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인간과 인간이 믿음을 바탕으로 한 정신적 교류가 단절될 때 세상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자무시 감독은 영화 전체적으로 소통이라는 화두를 다양한 방식으로 들고 나온다.

옛날의 방식이라는 것에 대한 회고. 사무라이나 비둘기 통신을 통해 전화를 비롯한

현대적 이기가 많아도 소통은 더욱 힘들어지더라는 것을 비교해보기도 하고.

프랑스인 아이스크림 장수와의 관계를 통해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정신적 교류와 믿음,

그 자체가 가장 훌륭한 소통수단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들은 서로 벽에 대고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실상 속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렇다고 짐 자무시의 <고스트 독>이 현대적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거부하는 영화는 아니다.

어쩌면 과거의 좋았던 것들, 잊혀진 것들을 응용해서 좀 더 살만하게 만드는 건 어떨까?

하는 바램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가 쓸쓸할 수 밖에 없었을까?

영화의 전체적인 톤이 쓸쓸함을 기조로 한다는 건 과거의 좋은 유산을 잃어버리면서

삭막해져 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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