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피에르 멜빌하면 현대인의 고독을 뼛속 깊은 곳까지 후벼 파는 영상이 주특기라고 할만큼 그동안 내가 본 그의 영화의 느낌은 아랑 드롱의 잘생긴 얼굴에 고독이 조각칼이 되어 주름살을 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그의 후반기의 작품에서는 고독이 그 자체로 주제가 되어 장르를 아우르고 있을 만큼 잘 그려내고 있다고 본다. 어쨌든 그의 이런 성향은 지속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이 나 을 보면서 한번 더 느껴본다. 물론 후기작만큼 고독이 사무치진 않지만 그래도 그 정서는 짙은 커피향같은 여운으로 공기속을 떠돈다. 2차대전중인 프랑스의 시골마을. 하지만 전쟁의 상처가 커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전쟁은 배경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과부인 바르니가 재미없는..
어쩌다 보니 또 음악이 유명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어릴때 TV에서 봤던 영화인데, 몇 장면은 늘 기억 한켠에 남아있는 영화였다. 죠반나가 안토니오를 만난 후 슬픔을 참지 못하고 기차로 뛰어오르던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지만, 나는 특이하게도 러시아에 살고있는 안토니오가 마샤와 함께 이사하던 트럭 장면도 늘 기억이 나곤 했다. 안토니오의 쓸쓸한 표정 때문이었을까? 이 장면은 나중에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에 박중훈과 유혜리가 변두리로 이사가는 장면에서도 기시감을 느낄 정도로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다시 본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해바라기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재미있었고, 그때보다 오히려 더 슬픈 영화였다. 삼각관계야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 또 여러 형태로..
영화 제목이 왜 플랑드르 일까 생각해 보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프랑스의 시골이 플랑드르라는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에서는 플랑드르라는 말이 시골, 비산업화 같은 뜻으로 일반적으로 이미지화 되어 있는 곳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프랑스인들에게 플랑드르라는 말은 순수, 고향, 모성 등등의 늘 따라다니는 이미지도 더불어 생각해 낼 수 있다고 본다면 플랑드르라는 말은 일종의 ‘마음의 고향’쯤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놓고 보니 문제가 심상치 않다. 이 ‘마음의 고향’에 살고 있는 이제 20대를 지난 듯한 젊은이들의 생활은 무척 무미건조해 보이기 때문이다. 플랑드르가 프랑스의 시골을 상징한다면 이 젊은이들은 프랑스의 시골 젊은이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을텐데, 이 젊은이들에게 희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