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검문소의 차단기가 내려와 있어도 전혀 구애받지 않고 이쪽과 저쪽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낙타에게는 자유가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중동이라는 지리학적 구도 속에서 국가가 강요하는 폭력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없다. 성인잡지의 요란한 누드사진 속 여자의 가슴을 X표시로 가려보려 해도 유두는 튀어나오는 것처럼, 두 눈을 가린다고 해서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 눈물은 흐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결국 국가가 강요한 폭력의 흔적을 땅에 묻는다고 진실마저 같이 묻힐 순 없고, 아들을 그 국가가 강요하는 폭력에서 구출해 낼 수도 없는 것이 폭력의 구조를 만들어내고야 만 인간이 처한 딜레마다. 사무엘 마오즈 감독이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한국의 과거도 떠올..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하곤 한다. 살아간다는 것이 별로 재미있지는 않아요. 나는 꼭 어떤 울타리에 같혀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지루하죠.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요. 하지만 그럴수가 없어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소나티네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기타노 감독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리한 일상과 삶이라는 것의 무미건조함을 알고 있는 감독이다. 그가 데뷔작인 그 남자 흉포하다에서부터 보여주고 있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일상의 무료함이다. 폭력은 그 일상속의 한 부분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일상이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듯 그의 영화에서 폭력은 순간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진다. 일상이 되어 버린 폭력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옆에서 칼부림이 나도 관심이 없다. 단지 싸우고 죽이는 것이 직업인 것이다...